시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마다 예외없이 이해 당사자간 마찰로 심한 파열음을 내면서 금융권이 멍들고 있다.
현대건설 매각의 경우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채권단을 상대로 소송전을 펼치는 양상이며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도 예비입찰에 나서기도 전에 판이 엎어질 기세다. 외환은행 매각 역시 배당금 확정지급 보장 논란 등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건설 채권단은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그룹의 자격 시비 등에 대해 오는 17일 주주협의회를 열어 최종 안건을 확정하고 21~22일께까지 채권금융회사들의 서면 동의 등을 거쳐 현대건설 매각 관련 문제를 매듭짓기로 했다.
하지만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모두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법정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주주협의회 주관기관인 외환은행 등은 이번 사태로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았다. 스스로 자초하기도 했지만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간 집안 싸움에 엮이면서 ‘신뢰성’에 금이 간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현대건설 매각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오더라도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신뢰성’에 금이 갈 수 밖에 없다”면서 “M&A가 예정대로 진행돼 금전적인 부분에서 이익을 얻더라도 금융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타격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떨어지면서 외환은행에 맡겨둔 1조원 이상의 예금을 인출하는 한편 최종 결정은 유보했지만 외환은행 여신관리본부 소속의 직원을 고발키로 하는 등 이미 서로간의 신뢰에 금이 갔다. 현대그룹도 ‘MOU 해지 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대출계약서 제출은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초유의 사태라면 강하게 반발하는 등 서로 등을 돌렸다.
하나금융지주도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서 속앓이 중이다. 특히 당초 인수과정에서 밝히지 않았던 내용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새롭게 등장해 인수계약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는 형국이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최대주주인 론스타가 연말 결산 때 주당 최고 850원의 배당금을 가져갈 수 있도록 계약한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으며 내년 3월말까지 론스타와 주식 인수를 끝내지 못하면 매월 주당 100원씩 매매지연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점도 당초 인수 과정에서 밝히지 않았던 사항이다.
여기에 외화은행 노조가 론스타에 대한 추가적인 이익 보장이 있는지 없는지, 론스타에게 지급할 전체적인 대금이 얼마인지, 론스타 세금포탈을 도와주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의 실체를 알기 위해선 계약서가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공세를 펼치면서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공적자금 투입 이후 10년 만에 추진되는 우리금융 민영화도 정부와 유력한 인수후보였던 우리금융 컨소시엄간 불화로 민영화 일정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논란의 핵심은‘경영권 프리미엄’.
정부는 유효경쟁이 성립되려면 정부 보유지분의 절반인 28.5% 이상의 지분을 인수할 주체들 간 경쟁이 있어야 하고(유효경쟁 성립), 가격도 시가에 상당한 수준의 프리미엄을 받아야 한다(공적자금 회수극대화)는 점을 염두에 뒀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금융 컨소시엄으로서는 독자적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 임직원들과 거래기업의 돈을 갖고 나서는 것인 만큼 정부가 예상하는 규모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민영화를 통해 글로벌 금융회사로 도약하려는 우리금융의 목표 달성을 위한 속도조절이 불가피해졌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대형 M&A가 잇따라 진행되고 있지만 서로간의 이해가 상충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외환은행,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 금융권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본연의 업무보다는 주변 상황에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등 겉은 멀쩡하지만 속이 멍드는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