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세제정책 방향이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등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의 법인세율을 유지하던 일본도 법인세율 5%포인트 인하를 추진키로 했고, 미국도 중산층 뿐 아니라 부유층에 대한 감세 혜택을 2년 연장키로 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세제개편 등 살림살이는 ‘해머국회’로 대변되는 국회에 발목이 잡혀 법인세 인하안 철회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정부 세제개편안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아 재정건전성 회복도 불투명하게 됐다.
정부의 내년 재정건전성 회복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가 지난 8월 내놓은 세재개편안은 금융위기 과정에서 악화된 재정건전성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정부안 상당부분이 국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당초 예상보다 무려 60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고소득자 감세 철회 결국 불발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7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과표구간 8800만원 이상 소득자에 대해 2012년 소득분부터 소득세율을 35%에서 33%로 낮추는 감세안에 대해 표결처리하지 못하고 내년에 다시 논의키로 했다. 이에 따라 고소득자 감세 철회 여부는 내년 정기국회에서 법인세 감세 철회안과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전날 늦게까지 조세소위에서 이 부분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해 이날 전체회의에서 표결 처리키로 했지만 표결 처리 안과 방식에 대해 서로 마찰을 빚다 오후 3시께 회의를 열었지만 서로의 의견차만 확인하고 90여 분만에 정회, 표결처리하지 못했다.
기재위는 또 한나라당과 일부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전날 조세소위에서 상정한 110여 건의 세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지만 이슬람 채권 과세 특례안 처리는 보류시켰다.
이슬람채권 과세 특례안은 외화 표시 이슬람 채권의 수익을 일반 외화표시채권과 같이 이자소득으로 간주해 법인세를 면제해 주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 ‘오일 머니’ 유치는 물론 면세 혜택을 기대하고 오일머니 등 이슬람 자금 유치를 준비했던 기업들의 자금 조달 계획도 차질이 예상된다.
당장 이명박 대통령의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순방 시 해당 국가들과의 협력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슬람채권에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 외화 조달차입선을 다변화하자는 것으로 이슬람채권을 달러표시채권과 차별할 아무 이유가 없다”며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원전을 수주하는 등 이슬람 지역과의 경제협력이 중요한데 이슬람채권에 대한 차별은 위해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전 세계 이슬람 채권 발행규모는 2000년 3억달러에서 2007년 364억달러로 급증했다.
◆국회에 발목 잡힌 ‘재정건전성’ = 정부는 지난 8월 세재개편 방향을 발표하면서 금융위기 과정에서 악화된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실효성이 낮은 비과세·감면 등을 과감히 철폐해 2015년까지 1조9000억원의 세수 증대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의 세재개편안에 상당 부분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내년 재전건전성 회복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대부분 이익단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내년 4월30일 일몰 예정이었던 택시LPG 개별소비세 면제는 2012년 말까지로 연장됐다.
고용유지중소기업 및 근로자에 대한 세제지원 일몰시기도 1년 연장됐고, 창투조합 등 출자금 소득공제 일몰은 2012년 말로 2년 늘어났다. 자동차운전학원 교육용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시기는 2012년 7월1일로 1년간 유예됐으며 국민주택 규모(85㎡) 이하 노인복지주택에 공급하는 용역에 대한 부가세 면제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비인기종목 운동팀 창단이나 운영기업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율은 7%에서 오히려 10%로 상향조정됐으며, 국내 복귀기업에 대한 소득·법인세 감면 등의 세제지원 기간도 정부안보다 2년 확대된 5년간 100%로 조정됐다.
이에 따라 당초 정부가 추산한 올해 세제개편안에 따른 세부 증가분도 1조9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무려 6000억원이나 줄어들면서 내년 재전건전성 회복은 물론 2013~2014년 균형재정 달성 목표 달성도 차질이 우려된다. 이승국 기자 in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