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돈이라면...." 우리시대 '공동의 가치'가 없다

입력 2010-10-07 11:00 수정 2010-10-1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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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코리아-초일류 국가의 조건] 시대정신 - 벽을 넘어서 上

#취업준비생 강모씨(27·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영어학원에 다닌다. 강 씨가 하루 6시간 일해서 받는 돈은 1만8000원. 시간당 3000원이다. 올해 임금 기준은 시간당 4110원. 하루에 7000원 가까이를 떼이는 셈이다.

점장은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널렸다”며 하기 싫으면 관두라는 식이다. 강 씨는 “억울하지만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학원비와 교통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최저임금 위반 업체가 지난해 1만4896곳인데 반해 처벌 건수는 6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외무고시를 3년째 준비 중인 이 모(30·남)씨는 최근 큰 좌절감을 맛봤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외교부 5급 특채 비리 사건을 접하고 나서다. 이 씨는 “힘들게 공부해도 되기 힘든 시험인데, 장관 딸이라고 해서 그냥 합격한다면 누가 열심히 노력하겠느냐”며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날 얘기가 된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이 초일류 국가로 가기에 앞선 필요한 전제 조건은 그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관, 즉 시대정신(時代精神)이다. 시대정신이 바로 서지 않은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일시적인 번영은 가능하지만 사상누각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는 지금 구성원이 공유하는 시대정신이 있는가.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국가 경제력과 과학기술, 국민소득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의식은 아직 낙후돼 있다. 가치관의 혼란, 세대 간 갈등, 지역 갈등, 빈부 격차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시대정신의 부재(不在)로 인한 많은 사회비용과 폐해를 스스로 야기하는 동시에 그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

시대정신의 부재의 원인은 무엇보다 출세와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한 데 있다.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천민주의적 사고방식은 대한민국을 보다 세련된 초일류 국가로 혁신하는데 커다란 장벽이다. 이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뤄진 산업화와 선진화의 다른 한 면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그늘이기도 하다. 이 그늘을 우리는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지만 또한 이제는 극복해야 할 시점이다.

누구나 권력을 갖고 싶어하고, 출세하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모두 권력과 돈을 쫓아 법대나 의대로만 진학하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인문과학이 캠퍼스에서 조차 푸대접을 받고, 물리학 수학 등 기초과학 전공자는 취업을 걱정해야 하고, 공대생을 의대진학에 실패한 사람이 다닌 정도로 인식하는 풍조가 만연한 사회는 죽은 사회다.

철학이 없고, 언어의 유희가 숨을 쉬지 못하며, 문학의 향기가 나지 않는 사회다. 그 사회에서는 내일을 위한 설계가 있을 수 없고, 창조의 열정이 피어날 수가 없다. 죽은 사회다.

출세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사회는 공정할 수가 없다. 진정한 민주사회라 할 수 없다. 공정한 기회는 민주사회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축사를 통해 ‘공정사회’를 천명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치철학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 5월 24일 출간된 이래 40만부 이상 팔리며 9주 동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있었던 국내 강연에는 1500명 정원에 무려 5000명이상의 인원이 몰리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다양한 벽이 바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저해 하는 요소이며 이 같은 벽이 있는 한 초일류 국가로 가기 힘들 것이란 분석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 사회의 외형적인 모습은 선진화 됐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하다. 국민총생산은 2만 달러에 이르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서민 빈곤화의 상징인 엥겔계수는 최악이다. 2분기 우리나라 가계의 엥겔계수는 13.3%로 2001년 3분기의 13.8% 이후 8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5년간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증가분 차이도 무려 2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효성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회가 갈수록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며 소셜 모빌리티(사회이동성)가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예전에 내가 대학교 다닐 때 만 해도 일류 대학교에 시골출신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서울의 특수학군 지역 사람들이 대부분 이고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도 특수 학군 출신이 차지하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다.

배규한 한국연구재단 사무총장은 변화를 강조하면서 사회의 벽이 변화를 가로막는 다고 분석한다. 배 사무총장은 “재산증식과 자식, 출세에만 집착하는 것이 나를 가두는 벽”이라며 “이는 결국 불공정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배 사무총장은 “우리는 흔히 불공정하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선진국에서는 큰 욕이 된다"며 “우리 사회가 불공정의 덫에 갖혀 있는 것은 결국 구성원이 공감하고, 실천할 시대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까지 우리나라 국민은 불평등 하다는 호소에 대해 ‘억울하면 너도 출세해. 사회는 원래 불공정한 거야’란 말을 들었지만 초일류 국가로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이제 스스로를 옭아 매는 벽을 허물어고, 바로 선 시대정신을 공유해야 한다는 얘기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나 대기업은 조금 더 성장을 이룬 후 성장의 결과를 나누는 게 낫다고 말한다. 몇 십 년 동안 통했던 것이기 때문에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그건 국민소득 1만 달러로 갈 때 통했던 방법”이라며 “진정한 초일류 국가를 위해서는 공정한 사회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예전 방식을 고수한다면 결국 막다른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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