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성의 글로벌프리즘] 흑사병과 재정플루

입력 2010-05-07 10:31 수정 2010-09-2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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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헬레네(philhellene). '그리스를 좋아하는' 또는 '그리스 애호자'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필헬레네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헬레노필레(hellenophile). 필헬레네와 비슷하지만 다소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헬레노필레가 그리스 문학이나 예술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경외가 아닌,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광기라고 말한다.

헬레노필레는 그리스인들이 과학을 발명했다거나 진짜 과학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는 등의 주장을 내세운다.

이같은 발상은 서양인들은 물론 아시아인 등 비서구인들에게도 종종 나타난다.

헬레노필레는 자국 문화의 우수성보다 그리스 문명에 대한 동경에 매달리는 경향을 보인다.

종종 서구적 오만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무조건적인 추종과는 다소 다르다.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헬레노필레가 문화적인 면에서의 흐름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피상적인 개념으로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의 머리에 침투해 생각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엇비슷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전염병이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에서다.

전염병은 백신을 사용해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지만 이는 백신이 개발됐을 때 얘기다.

전염병 중에서도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악몽 그 이상이었다. 당시 전세계에서 7500만명이 죽고 유럽에서만 25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속수무책이다. 최근에는 지난 겨울 전세계를 휩쓴 신종플루가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예상보다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신종플루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텅 비었고 다른 사람이 재채기하는 것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 사태가 네이팜처럼 증시는 물론 외환, 채권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투자자들은 신종플루를 접할 때처럼 유럽발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번 그리스 사태를 두고 '유럽 플루(european flu)'가 왔다는 목소리가 출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유럽발 재정위기 사태가 신종플루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는 그리스 악재가 유럽을 건너 전세계로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흑사병과 신종플루. 그리고 재정플루. 시대가 다르고 매개체가 다르지만 같은 전염병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금의 상황은 심각하다.

흑사병과 신종플루 백신은 제약회사가 만드는데. 재정플루 백신은 누가 만든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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