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가운데 리먼 쇼크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일본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와 소비위축에 따른 디플레이션등으로 장기불황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54년만에 정권교체를 실현한 민주당 하토야마 내각의 리더십 부재까지 겹치면서 돌파구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주요국들과 나란히 출구전략을 논하기는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지난 3월 16, 17일 이틀간에 걸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시중 자금공급 규모를 기존의 10조엔에서 20조엔으로 2배 늘리기로 결정했다.
작년 12월 10조엔에 이어 추가로 공급하는 10조엔에 대해서도 연리 0.1%, 대출기간 3개월을 적용키로 했다. 기준금리는 0.1%로 유지했다.
BOJ의 이 같은 조치에 시장에서는 정부의 요구만 충족시켰을뿐 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만 팽배하다.
금융위기 이후 BOJ는 금리를 제로수준인 0.1%로 동결하고 총 10조4000억엔 가량의 자금을 시장에 공급했다. 그러나 정작에 금융기관들은 이번 금융위기 같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자금확보를 이유로 대출을 기피하고 있어 시장은 여전히 돈에 목말라하고 하고 있다.
국가부도 수준의 재정적자도 일본의 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부채는 871조5000억엔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 국민 한 사람당 683만엔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재무성은 올 회계연도 말에는 973조엔까지 국가부채가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1월말 미국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시켰다. S&P는 재정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고, 하토야마 정권의 재정 정책도 실망스럽다는 이유를 들었다.
일본은 고령화에 따른 사회복지 예산 증가와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세수가 크게 줄면서 재정 수입으로 원금은커녕 이자갚기도 버거운 상황. 국채발행으로 재원을 마련하다보니 올해 일본 정부가 부담해야 할 국채 이자비용은 10조2000억엔으로 전체 세수의 26%나 된다.
사상 최악에 가까운 디플레도 고민거리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일본의 디플레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번 디플레를 선언한 2001년 3월~2006년 6월 이후 3년반만이며 21세기들어 두번째다.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지난 2008년 여름 전년 동기 대비 2.4%까지 상승한 후 하락하기 시작해 2009년 봄부터 마이너스로 전환, 같은 해 여름 -2.4%까지 하락한 후 올해 1월(-1.3%)까지 11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디플레가 지속될 경우 금리 상승과 채무 부담을 늘려 내구재 구입을 지연시키는 등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침체에서 탈출하고자 몸부림치는 일본의 경기회복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일본 경제는 여전히 암흑천지다. 하토야마 정부에는 세금 인상등 과감한 재정개혁이 요구되지만 여론을 의식해 임기 내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모든 부담은 일본은행이 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손을 뗀 상황에서 현재 일본은행은 초저금리를 바탕으로 시장에 자금을 푸는 것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금리인상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은행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신속하고 과감하게 행동해 나아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재원마련을 위해 국채를 추가 발행할 경우 일본은행이 떠맡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녹록하지 않다. 일본은행이 섣불리 국채를 매입해 정부에 자금공여를 시작하면 통화 발행을 늘리는데 지장을 초래해 악성 인플레를 유발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1400조엔에 달하는 가계자산과 민간부문에 대한 국채매입 의존도가 높아진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디플레에서 탈출하고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일본은행에 대한 국채 매입 압력은 거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