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 반동안 한·미·일 관계의 거리를 더 좁히는 데에 외교력을 집중했다. 지난해 한미일 정상이 캠프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를 성사시켰고, 취임 2년 반동안 기시다 전 총리와 한국과 일본 오가며 셔틀외교를 복원했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와 딜을 중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귀환으로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대북 정책와 방위비, 주한미군 같은 외교안보 정책에서 커다란 불확실성을 마주하게 됐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해 한미일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위기 시 서로 협의하도록 약속하는 ‘3자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을 채택했다. 당시 ‘상호방위조약’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세 국가가 ‘준동맹’ 관계로 격상됐다는 전망이 많았다. 한미 간 상설 확장억제 협의체인 NCG도 출범했다. 임기 전반기 기시다 전 총리와는 일본과 한국을 통틀어 12차례나 정상회담을 하는 등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반면 북한과의 관계는 더 껄끄러워졌다. 지난해 북한은 9·19 남북군사합의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를 콘크리트 초소로 복원했다. 올해는 쓰레기 풍선 도발을 이어갔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한 데 이어 최근엔 러시아에 북한군을 파병하면서 한반도 안보의 긴장감을 높였다. 대통령실은 북러군이 함께하는 전투가 본격적으로 개시될 경우 북한과 러시아가 어떤 전술을 구사하는지, 어떤 무기체계를 활용하는지 등을 우크라이나와 함께 대응할 필요성에 무게추를 두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복귀로 대북 및 외교안보 정책의 험로가 예상된다. 앞서 1기 시절 트럼프 당선자는 주한미군 철수를 자주 거론했다. 두번째 임기에서 방위비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8% 수준인 한국의 국방비 지출 규모를 3%가 훌쩍 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 후보 시절 한국을 ‘머니머신(현금인출기)’에 비유하며 “내가 백악관에 있었다면 한국은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했을 것”이라며 말했다.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 등을 조정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 새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목표에서 이탈,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은 중단하게 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거래 협상을 벌이며 한국 패싱이 현실화하면 한미 관계의 고리는 약화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 여론이 힘을 받는 이유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상황에 트럼프 당선자까지 등장하면서 우리 입장에선 대북 정책 방정식이 한층 더 복잡해진 셈이다. 하 교수는 “트럼프 당선자 입장에선 대북정책이 최우선 정책에 있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한국패싱을 막기 위해선 우리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일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한미 관계는 견고하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개정 가능성에 대해 “한미간 방위비 분담 협정은 완료한 상태”라며 “한미가 현재 시점에서 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어 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년 반 동안 미국 내에서 한미동맹을 존중하고, 글로벌 차원에서 발전시켜 나가야겠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고 우려에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