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관계만 놓고 봤을 때 김 장관의 발언은 틀리지 않았다.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나갔던 것도 사실이고, 선조 여권의 국적이 일본으로 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사실관계보다 감수성이 중요하다. ‘저 사람이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내가 이렇게 답한다면 저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려해야 한다. 질문의 목적은 다양하다. 사실관계 확인이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는 본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는 답변자에게 밴 습관이나 편견을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는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누군가는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 질문한다. 질문의 의도를 모르면 100% 사실도 간혹 오답이 된다.
쉬운 예로 취업 실패로 낙담한 친구에게 ‘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타박했다고 가정해보자. 또는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토로하는 친구에게 ‘그렇게 힘들면 때려치워. 너 말고도 하겠다는 사람 많다’고 말했다고 해보자. 앞으로도 이 친구와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정해진 답은 없지만, ‘넌 충분히 열심히 했어.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 ‘다들 힘들게 사네. 우리 한번 잘 버텨보자’ 정도로 답했다면, 적어도 우정이 깨지거나 흔들리진 않을 거다.
일제강점기 논란으로 돌아와 보자. 올림픽에 나갔던 손기정 선수 가슴에 박혔던 국기가 무엇이든, 선조 여권의 국적이 어떻게 표기됐든, 이를 이유로 ‘나는 일제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거다. 선조들은 강제로 영토와 주권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조선인’ 내지는 ‘대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우리 말과 우리 글, 우리 문화를 지키고 퍼뜨렸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나름의 자부심이다. 선조들은 주권과 영토를 빼앗기었을지언정 일제의 국민으로 살진 않았다. 정치가 반드시 민심을 대변하진 않지만, 상대를 공격할 땐 민심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더군다나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한일병합조약을 비롯한 강제 조약들은 무효가 됐다. 강제로 행해진 불법적인 일들이 모두 무효가 된 마당에, 사실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다.
이런 점을 고려했다면 김 장관의 답변은 달랐어야 했다. 답변이 “인사청문회 때 제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는 명백하게 조선인이며, 대한인입니다. 1965년 조약으로 과거 조약들이 무효가 됐으나, 강점 당시에는 원치 않게 일본 국적을 가지게 된 사례가 있다는 점을 말하는 과정에서 세심하지 못한 설명으로 오해를 일으켰습니다. 의원님들의 지적에 동의하며, 앞으로 발언에 유의하겠습니다” 정도만 됐어도 퇴장 소동까진 없었을 거다.
25일 종합감사에서는 증인석에 김 장관이 복귀하길 기대한다. 그러려면 가장 필요한 건 감수성이다. 때로는 내 생각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답이 정답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