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주 6일제’로 본 그리스의 ‘새옹지마’

입력 2024-07-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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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호 국제경제부장

한때 구제금융 조건으로 강요받아
지금은 경제회복에 일손부족 대처
근로시간 단축·연장, 관건은 ‘성장’

이달 초 그리스가 우리나라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세계 곳곳에서 일자리 증가와 생산성 향상, 직원 삶의 질 개선 등을 이유로 ‘주 4일 근무제’ 등 근로 시간 단축을 모색하고 있는데 마치 이런 시대와 역행하듯이 그리스는 이달부터 일부 산업에서 ‘주 6일제’를 적용한 것이다.

당연히 그리스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고 있지만, 정부는 새 조치가 ‘근로자 친화적’이고 ‘성장 지향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초과 근무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를 지원하며 미신고 노동 문제를 단속하는 데 도움이 되려는 취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의 거꾸로 가는 주 6일제 논란이 왠지 익숙해서 살펴봤더니 12년 전 유럽 재정위기 당시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당시 ‘트로이카’로 불리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그리스 채권단 대표가 2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엄격한 조건 중 하나로 주 6일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주 6일제이지만, 이를 둘러싼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2012년 당시 채권단의 요구는 모욕적이기까지 하다. 트로이카 주장의 근저에는 그리스 사람들이 게을러서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한마디로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반면 올해 그리스 정부가 도입한 배경은 어느 면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경제가 가파르게 회복하는 와중에 일손 부족이 심화해 이에 대처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2%, 내년은 2.3%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평균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률은 올해 10.3%에서 내년 9.7%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2년 전 그리스는 트로이카가 요구한 가혹한 구조조정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주 6일제는 도입하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자국에 편견을 보이는 서유럽 부자나라들에 대한 반발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경제가 잘나가니 굳이 다른 나라가 요구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더 많이 일하는 것을 선택한 셈이다.

서구 부자나라들의 이중적 태도도 눈에 띈다. 과거 자신들이 이를 요구했을 때는 근무시간의 유연성을 높이고 노동시장의 개혁을 위해서 도입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그리스 정부가 정작 이 제도를 실시했더니 주 4일제 도입 등 근무시간을 줄이려는 다른 유럽 국가와 거꾸로 간다고 비판적 시각을 보인다.

심지어 그리스 사람들은 이미 열심히 일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그리스의 1인당 연간 근무 시간은 1886시간으로 38개 OECD 회원국 가운데 일곱 번째로 길고 EU 평균인 1571시간을 훌쩍 넘는다.

한편 주 6일제를 둘러싼 그리스의 ‘새옹지마’를 보면 근무 시간 자체보다는 경제 전반의 성장세를 끌어올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주 4일제든 주 6일제든 근무 시간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화두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성장 스토리가 없다면 어떤 논의도 무의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주 69시간 근무제’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만일 우리나라가 과거와 같은 고도 성장기여서 일한 만큼 돈도 팍팍 줄 수 있었다면 논란이 됐을까. 반대로 경제가 잘나가면 그만큼 생산성이 좋아졌다는 의미여서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장이다. 14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이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를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baejh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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