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까지는 여권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반공 교육을 의무로 받아야 했고, 갖가지 서류를 만들어 제출해야 했지요. 그럼 법무부가 이를 바탕으로 해외여행 허가를 줬습니다. 남자는 병역 의무를 마치기 전까지는 여권 만든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어렵게 만든 여권을 쥐고 비행기에 올라타면 지켜야 할 것도 꽤 많았습니다. 요즘과 비교할 바 아니지만, 1990년대에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갖가지 규칙과 규범을 지켜야 했지요.
미국 연방항공청(FAA) 사고조사 기록을 살피다 “항공 관련 규정과 규범·규칙은 모두 피로 쓰여 있다”라는 문구를 봤습니다. 항공사고 이후 재발 방지를 막기 위해 마련한 규칙이라는 뜻입니다.
조종석에 반드시 2명 이상의 승무원이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규정도 비교적 최근에 생겼습니다. 2015년 기장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부조종사가 조종석 문을 잠가 버린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문을 잠근 부조종사는 그대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승객 142명도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새로운 규정이 생긴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외신을 통해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접합니다. 우리는 ‘먼 나라 이야기’라는 이유로 이를 간과하고는 하지요.
그러나 이를 귓등으로 흘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항공사고의 모든 규범이 희생자의 피로 쓰인 것처럼, 해외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는 희생자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묵직한 경고장이기 때문이지요.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시급한 현안 가운데 하나가 우리 주변의 건설 인프라입니다.
작년 4월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70년이 훌쩍 넘은 3층짜리 주차 빌딩이 붕괴했습니다.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는데요. 미국 현지에서는 희생자를 애도하는 한편, 붕괴 원인을 놓고 다양한 분석과 대안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목된 붕괴원인 가운데 하나가 ‘내구 피로도’를 높인 자동차 무게입니다.
미국 차만 예로 들면 1950년대 자동차보다 2020년대 자동차는 2배 이상 무거워졌습니다. 그뿐인가요. 육중한 배터리를 심어 넣은 요즘 전기차 무게는 내연기관 차보다 2.5배 이상 무겁습니다.
이를테면 50대가 들어설 수 있는 주차건물 옥상을 향후 전기차가 가득 채운다고 가정하면 이 옥상은 100대 이상의 차 무게를 견뎌야 하는 셈이지요.
눈을 돌려 한국에 돌아와도 우려는 여전합니다. 우리 주변에 꽤 많은 고층 건물과 건설 인프라가 1980년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년째 수많은 풍파와 스트레스를 받아온 건물과 교각·도로가 즐비한 셈이지요.
우리 경제 발전에 버팀목이 돼준 건설 인프라는 여전히 든든하게 우리 곁을 지키고 있지만 이들이 언제 위협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습니다. 중국과 미국 등은 일찌감치 주요 사회 인프라에 대한 안전성과 내구연한을 주제로 논문 등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대응해야 합니다. 먼 나라에서 날아오는 사건과 사고 소식은 단순히 그곳에 머물지 않고 단박에 우리 앞에 닥쳐올 수 있는, 소리 없는 경고입니다. jun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