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바이든 정부가 떠나기 전에 방위비 분담 협상을 결판내는 게 좋겠다. 열흘 전 2026년부터 한국이 낼 분담금을 정하는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5차 회의가 열렸다. 예년보다 일찍 시작한 회의는 갈수록 개최 주기가 짧아지면서 조기 합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다만 대선 전까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능하다 해도 트럼프 정권의 재협상 요구 가능성도 있다. 그럼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이 핵무장 준비다. 이미 트럼프 측근이나 참모 후보들 사이에서 핵무장을 허용할 수 있다거나 핵무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는 나온 상태다. 애써 트럼프 정권에 끌려다니며 지갑 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곳곳에서 전쟁이 나고 각국이 무장을 강화하는 추세다. 우리도 한반도나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기 싫으면, 나아가 전쟁에서 이기려면 핵무장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에게 받아온 워싱턴 선언은 믿을 게 못 된다. 핵 공유가 명시되지 않은 워싱턴 선언은 굳이 비교하면 1994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내민 부다페스트 각서보다 나을 것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에 따르면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던 레오니드 크라프추크는 자국의 모든 핵무기를 내놓게 된 각서에 서명한 뒤 “내일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들어가도 누구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핵무기를 내놓는데 상응하는 안보를 약속받았지만,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우려하던 일은 실제 벌어졌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도 믿을 게 못 된다. 북한의 남침 후 유엔군 파견에 동의했던 중화민국도, 스탈린을 거부권이 아닌 기권표를 들게 만든 힘의 균형도 더는 거기 없다. 떼쓰는 중국과 러시아, 자국민 먹여 살리기도 바쁜 서방만 있을 뿐이다.
오래전 미국 수석 협상 대표로서 북한과 핵 문제를 협상했던 로버트 갈루치는 5월 제주포럼에서 한국의 전술핵 재배치 생각이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의 결론은 또 대화였다. 글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무지한 건 갈루치 본인이 아닐까 싶다. 선은 지워졌고 새로운 선들이 계속 그려지고 있다. 언제까지 선 넘었다고 징징댈 수는 없다. 우리도 새 선에 맞춰 한 발 내디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