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닫은 싱가포르 대신 홍콩으로 가는 중국 부유층...'세금ㆍ비자ㆍ여행' 삼박자 들어맞아

입력 2024-07-0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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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엄격한 자금 세탁 규제에 홍콩 관심 급증
중국과 가까우면서 자본 정책 개방적인 게 매력

▲홍콩공항관리국이 관광객을 늘리고자 '월드 오브 위너스(World of Winners)'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뉴시스
▲홍콩공항관리국이 관광객을 늘리고자 '월드 오브 위너스(World of Winners)'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뉴시스

중국을 떠났던 부유층의 귀환 소식에 홍콩은 환영의 문을 열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과거 중국 부유층의 1순위 이민국이었던 싱가포르 대신 홍콩이 신흥 이민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중국을 떠났던 백만장자 약 200명의 귀향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이 싱가포르가 아닌 홍콩을 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가 자금세탁방지법을 시행하면서 5년째 외국인 자산에 대한 조사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홍콩은 엄격한 검역과 정치적 격변 등을 이유로 '안전한 이민국'으로 선택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설명했다.

홍콩은 지난해 자산 운용(AUM) 규모가 2.1% 성장한 4조 달러(약 5528조4000억 원)를 기록했다.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이번 달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프라이빗 뱅킹(PB)과 자산 관리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순자금 유입액이 3배 이상 급증한 3900억 홍콩달러에 육박했다”고 전했다. 2022년에는 PB 및 자산 운용 규모는 80% 이상 감소했었다.

익명을 요청한 소식통은 블룸버그에 “싱가포르의 자금세탁방지법 여파로 일부 은행은 고객 파악 절차를 다시 진행하고 있다”며 “싱가포르의 부유한 중국인들이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 있어 중국 부유층들이 굉장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인 금융 허브인 싱가포르는 불법 자금 방지ㆍ범죄 예방 등을 위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권고사항을 준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4월에는 고객 정보를 공유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도입했다. 홍콩의 한 컨설턴트는 "중국 부유층으로부터 홍콩으로 사업을 이전하거나 설립하겠다는 문의를 15건 이상 받았다"며 그중 절반은 실제 거래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홍콩대학교의 지우 첸 금융학 교수는 “중국의 많은 억만장자가 정부의 개입이나 재산에 대한 위협을 싫어하기 때문에 중국 밖으로 돈을 옮기고 싶어 한다”며 “싱가포르가 중국 본토만큼 많은 검사와 엄격한 규제를 한다면 갈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첸 교수는 “싱가포르에 관한 관심이 줄어든 대신 홍콩에 더 사업 기반을 두는 억만장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이 다시 국경의 문을 연 것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홍콩에서 고속철도 등을 이용해 중국 경제특구인 선전, 광저우, 마카오 등으로 구성된 ‘그레이터 베이 지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중국 본토의 경제 상황을 자세히 주시하기를 원하는 중국 부유층에게 매력적인 요소라고 블룸버그가 풀이했다.

고소득자와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홍콩의 ‘톱 탤런트 패스(최고 인재 비자 프로그램)’ 도입도 부유층 유치에 효과적이다. 2022년 도입된 이 비자는 세계 100대 대학 졸업자, 또는 연간 소득이 250만 홍콩 달러 이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발급된다. 2도입 이후 6만8000 건 이상의 신청이 승인됐고, 이 중 95%가 중국 본토 출신이다.

해당 비자로 홍콩에 자리 잡은 한 남성은 “홍콩 신분증이 있으면 미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더 쉽게 여행할 수 있다”며 “중국 정부의 정책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민하는 것보다 홍콩과 같은 중립적인 곳이 더 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이 중국과 닮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자본 흐름에서는 여전히 개방적”이라고 전했다.

홍콩의 PB 수익은 중국 부유층 고객에 힘입어 올해 이미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다만, 대부분 고객 자산이 500만~1000만 홍콩달러로 초부유층에는 속하지 않는다. 중국인이 해외로 돈을 옮기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홍콩의 기업공개(IPO) 시장이 침체해 억만장자의 자산 창출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한, 싱가포르가 겪었던 불법 자금 문제가 홍콩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 홍콩은 300만 홍콩달러를 투자하는 사람에게 거주권을 제공하는 비자를 시행했다. 3월 출시 이후 두 달 새 250건의 신청을 받았지만, 이들 중 200명이 기니비사우와 바누아투 출신이었다. 이들 국가는 금융 범죄자들이 현금을 이용하기 위해 이주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다만, 싱가포르는 백만장자들에게 여전히 인기 있는 이민국이다. 영국 이민 컨설팅회사 헨리앤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3500명의 백만장자가 싱가포르로 이주할 것으로 예상한다. 홍콩 또한 지난해 500명의 이탈을 회복할 만큼 이민자가 많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글로벌 자산 정보 회사 뉴월드웰스의 앤드루 아모일스 연구원은 “지난 10년간의 힘든 시기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여전히 세계 최고 백만장자 허브 중 하나”라며 “홍콩은 분명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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