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적 역할 확대와 부채관리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 여전한 사회의 불신과 건설·부동산 시장 구원투수로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위치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취임 1년 8개월을 맞은 이한준 LH 사장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선명히 드러냈다. 만약 부채가 늘더라도 전세사기나 공공주택 공급 확대와 같은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지난 4일 세종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하반기 LH 업무계획을 설명하고 현안과 관련해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이 사장은 2022년 11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보통’(C) 등급을 받으며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년 연속 ‘미흡’(D) 등급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LH가 주택 경기 불황 상황에서 주택공급 확대와 건설사 유동성 확보에 나서며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역할을 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때문에 이 사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LH가 주택공급을 조기화하고, 물량을 확대해 시장 불안의 불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택 승인과 착공을 동시에 추진해 착공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하고, 해약된 민간 주택건설용지를 전환해 공공이 직접 착공하도록 하겠다"며 "그동안은 연초에 계획을 세워 연말에 착공했지만, 내년부터는 상반기부터 하반기까지 골고루 착공이 이뤄지도록 일정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착공물량 부족으로 인한 전세난에 대비하기 위해 도심 안에서 비교적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매입임대사업을 수도권 중심으로 올해와 내년에 집중적으로 확대하겠다"며 "LH 매입임대주택은 애초 2만7000가구였으나 민생토론회 거치며 든든전세를 포함해 3만7000가구로 늘렸고, 이외에도 부족하면 국토교통부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사기와 관련해서도 정부 방침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사장은 "하반기 전세사기 피해 임대주택 매입을 대폭 늘리고, 상반기에 이뤄진 매입임대 요건 완화와 협의매수를 통해 피해자를 최대한 신속히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세사기 사건은 비아파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지만 각각의 생애주기에 따라 다양한 주택 유형이 필요하다"며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하는 주택유형인 다세대·연립주택, 주거용 빌라 등을 매임임대로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행보에 LH의 자금 부담과 부채비율 상승 등 우려 역시 적지 않다. 이에 이 사장은 시장 위기 대응의 '적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사장은 "전세사기 관련 정부안을 실현하려면 LH의 역할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적자가 예상되고 실제 매입임대를 할 때 한 채당 정부 보조가 적어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LH가 지금까지 잘 견뎌왔고 당분간 견뎌낼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어 "최근 LH가 하는 택지개발 사업에 미분양 등이 있어 일시적 어려움은 있으나 유동성 부분은 문제시 되지 않고 있다"며 "매입임대를 확대하는 것은 소규모, 영세 건설회사를 활성화해 골목경제를 살리는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모든 비용을 자체 조달하기 어려운 만큼, 사업을 위해 채권을 발행하거나 차입을 실시하면 LH의 부채비율도 늘어날 공산이 크다. LH는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돼 있어 2026년까지 부채비율을 200% 아래로 낮춰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LH의 올해 1분기 말 부채비율은 218.78%다.
이 사장은 "부채비율에 연연하지 않고, 일단 정부가 발표한 정책을 이행할 것"이라며 "부채비율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 제 기본 인식"이라고 말했다. 부채비율 증가 우려에 대해서는 "일시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아지더라도,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워 민간이 투자를 기피할 때 LH가 공적역할을 다하는 것이 공기업으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발표한 대로 LH가 자금을 조달해서 집행할 때 중장기적으로 부채비율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회계법인 용역을 통해 산출했고 (개선 방향을)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정부 역시 용역 결과를 보고, LH가 공적 역할을 다하는 데 있어 긍정적으로 챙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시민단체가 제기한 '고가 매입'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최근 LH가 임대주택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이 사장은 "고물가와 고금리로 시장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데, 공공이 미리 나서지 않으면 2~3년 후 부동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질 것"이라며 "일시적인 비난이 있더라도 미래를 대응하겠다는 생각으로 적극 임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지적과 달리 매임기준 지침은 LH는 물론 SH(서울주택도시공사), GH(경기주택도시공사)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라며 "시민단체는 그 역할을 다하고, 공기업은 공기업의 소임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