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다. “예상치 못한 손님이 평범한 이라크인 농부의 현관문을 두드린다 … 바로 (미군에 쫓기고 있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었다.” 이런 유혹적인 로그 라인의 영화는 흔치 않다. 안 볼 수 없었다. 영화는 실망을 주지 않았고 다른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던 것으로 안다. 2003년 4월부터 12월에 체포되기까지 그를 숨겨준 이라크 농부 알라 나미크(당시 30대 초)의 이야기다. 영화는 대부분 재연으로 구성되었다.
정확히 하자면 그의 문을 두드린 건 그의 형이었다. 손님이 와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고, 가서 보니 후세인이었다. 그 동네는 후세인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권력자의 고향 마을이 대개 그렇듯 그의 지지자가 많았다. 알라의 집안에도 후세인 밑에서 요리사 등으로 일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후세인이 집안의 어른을 접촉해서 믿을 만한 사람을 물었고, 그래서 알라가 선택된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영화에서 본 알라의 인상은 체격이 좋고 지적이라는 것이었다. 농부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말을 조리 있게 잘했다. 후세인의 혈압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바그다드까지 가서 응급 처치법을 배우고 왔단다. 영화 속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후세인의 주치의였고, 미용사였으며, 경호원이었고, 요리사였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임이 분명하다. 후세인에게 25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렸을 때 후세인이 웃으며 “날 팔 거냐?”고 묻자, 그가 “가격이 더 오를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농담했단다.
사담 후세인은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10명 안에 들어갈 만한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사람들을 수만 명 학살했다. 그의 집권 동안 2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도 영화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알라가 마당에 욕조를 마련해 목욕하게 하고 등을 씻어주자, 그도 알라가 사양하는데 불구하고 그의 등을 닦아준다. 두 아들이 한번 찾아왔었는데 (이 아들들도 망나니로 알려져 있다) 여느 부자 모습과 다를 바 없었고, 이후에 그들이 미군과의 총격에서 사망하자 통곡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자네가 내 아들이야”라고 했단다.
사담 후세인이 ‘구멍(hole)’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있다. 자세히 읽지 않은 필자는 그걸 비유적인 표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니 정말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토굴이었다. 비상시에 들어가 숨었다. 화단으로 위장했는데 역시 알라의 솜씨가 돋보였다. 거기 있다는 정보를 얻어 미군이 들이닥쳤을 때, 그들은 정확한 위치를 못 찾아 한 시간 이상을 헤맸다. 후세인의 체포를 주도한 수사관의 회고록을 보면 당시 상황이 나와 있다. 비밀을 폭로한 사람은 후세인의 최측근이었던 무함마드 이브라힘이었는데 그는 정확한 위치를 모른 척하고 있다가 어쩔 수 없어 넌지시 알려준다. 말을 하지 않고 발로 슬그머니 흙을 치워 연결 로프를 드러낸다.
후세인은 이라크 법정에서 재판받고 2006년 12월에 처형되었다. 그와 함께 체포되었던 알라는 악명 높은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고생하다가 6개월 만에 풀려났다.
감독 할콧 무스타파는 쿠르드계 노르웨이인이다. 작년 말에 할리우드리포터지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14년 전부터 이 소재에 관심을 가졌으나 알라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2012년 워싱턴포스트지에 그의 근황이 보도된 것을 보고 그와 연결할 수 있었다. 그는 극영화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