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최저임금인상, ‘승자의 저주’ 경계해야

입력 2024-06-2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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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해고위험 없는 정규직에 혜택집중
근로소득자 간 양극화 심화시키고
기금고갈·국가경쟁력 약화 초래해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는 승자의 판단 착오와 오만으로 자기 발등을 찍는 패착을 의미한다. 공개입찰에서 입찰가격을 높게 써내면 낙찰되더라도 실속 없는 것이 ‘승자의 저주’다. 다른 맥락으로 확대해석도 가능하다. ‘쟁취한 것이 아닌 사회적 배려’로 얻은 이익을 도덕적 명분에 함몰되어 지키지 못하거나 수혜자 범위를 넓혀 이익을 스스로 희석하는 행위를 포함할 수 있다. 최근 ‘최저임금인상’ 논의가 여기에 해당된다.

최저임금은 시장이 아닌 국가가 임금을 결정하는 ‘정치임금’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한 것은 소득주도성장의 방아쇠로 최저임금인상을 선택한 결과만은 아니다. 소득주도성장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동안 저소득 근로계층이 소득분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손해를 봐왔다는 사회적 인식과 정서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면서 연이어 두 자릿수(17%, 10%)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최근 통념에 반하는 의미심장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20년간 한국의 소득 불평등과 이동성’(장영성 외)에 의하면 한국은 2002~2022년 사이 소득분배가 크게 개선되었다. 국내 근로자 하위 10% 소득계층을 분모로 상위 10% 소득계층 소득을 분자로 측정되는 10분위 배율이 2002년 10.5배에서 2022년 7.6배로 27.4% 감소했다. 20년간 소득불평등도가 크게 하락한 것이다.

이는 같은 기간 상위 10% 실질소득이 20.4% 오른 반면, 하위 10%의 실질소득은 65.9% 상승했기 때문이다. 동(同) 분석은 ‘가계금융복지조사, 가계동향조사’ 등 설문조사 방식에 근거한 소득 통계가 아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수집한 근로자 전체의 실제 소득 통계를 이용한 것으로 분석의 정밀도가 높다. 이는 그동안 정책당국, 경제학자, 일반 대중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다.

그동안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법 4조에 명시된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결정해 왔다. 결국 ‘유사 근로자의 임금, 소득분배율’을 헛짚고 최저임금을 ‘과다책정’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지렛대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간 가려진 최저임금의 역작용을 직시해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이고 최저임금만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거대한 착각이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구직하기가 어려워지고, 기존의 근로자는 해고의 위험이 커진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 혜택은 이미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있는 해고 위험이 없는 정규직에게 오롯이 돌아간다. 정규직 최저호봉은 최저임금에 맞춰져 자동적으로 인상되고 각종 수당도 같이 올라간다. 최저임금 인상은 ‘근로소득자 간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분배 개선에 기여했다는 분석을 백안시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한 양극화 심화도 유의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과속하고 있다는 증거는 2022년 현재 임금근로자의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이 6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국의 최저임금 비율, 벨기에(40.9%), 일본(45.6%), 아일랜드(47.5%), 독일(52.6%)을 훌쩍 넘는다는 사실이다. ‘최저임금 미만율’로도 포착된다. 경총 보고서를 보면, 2023년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는 301만 명으로 미만율은 13.7%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기초한 ‘사업체조사’에서도 2022년 최저임금 미만율은 3.4%이다. 법으로 지켜야 할 최저임금이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기준선 역할을 하고 있다. ‘구직급여’ 하한선은 최저임금의 80%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구직급여도 인상된다. 올해 1~4월 구직급여 지급액은 총 3조9252억 원, 월평균 1조 원에 가깝다. 고용기금 고갈을 가속화시킬 소지가 크다.

그동안 노동계는 ILO 협약을 논거로 동일노동·동일임금 지급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에게 감액없이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생산성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자기권리 포기다. 자영업자의 속성이 강한 플랫폼 노동자에게 일반근로자와 같이 최저임금을 지급하라는 사회적 압력에 굴해선 안된다. 이는 사용자부담을 근거 없이 가중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승자의 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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