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어느새 거리와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위기의 순간, 도미노 파크 책임자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지름 2.4미터의 흰색 동그라미 30개를 1.8미터 간격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안에서 홀로 또는 가족끼리 일광욕을 하고 책을 보고 담소를 나눴다. 일상을 즐기면서도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게 된 것이다. 디자인 분야 세계 석학인 에치오 만치니는 “디자인은 생각과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모든 행위”라고 했다. 흰색 동그라미가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준 셈이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 중인 정책들도 디자인적 관점에서 제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시화는 빠른 성장과 풍요를 가져왔지만 가혹한 라이프스타일을 수반했다. ‘새로운 흡연’이란 혹평이 나올 정도다. 고립, 우울, 대기오염 등 ‘부산물’도 남겼다. 도시는 어느덧 비인간적이고 반환경적인 공간의 대명사가 됐다.
‘디자인 서울’ 덕에 그런 도시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청계천과 광장을 책방으로 만든 ‘서울야외도서관’, 문화·예술 문턱을 낮춘 ‘천원의 행복’, 걷는 재미를 주는 ‘손목닥터9988’, 뚜벅이도 즐거운 ‘기후동행카드’, 동네로 자연을 데려온 ‘도시정원’, 한강을 놀이터로 만든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도시를 인간·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바꿔놓고 있다.
일상에서 즐겁고 유쾌함을 맛본 사람들의 인식도 점차 변해 간다. 공간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은 머물고 싶은 도시로, 문화·품격·생태·첨단 도시라는 정체성으로 진화한다. GDP(국내총생산)만으로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도시경쟁력을 강화해 가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도시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선 갈 길도 멀다. 서울시는 강남북 균형발전을 위해 2008년 재산세 공동과세를 ‘디자인’했다. 2007년 재산세 격차가 15배에 달할 만큼 재정 불균형이 심하자 내놓은 처방이었다. 덕분에 2020년 5배 수준까지 줄었지만, 불균형은 여전하다. 서울시의 강북 대개조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이유다.
미래 먹거리 디자인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가령 2014년 완공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당시만 해도 대규모 녹지공원과 건축물을 결합한 가장 혁신적 설계로 주목받았다. 세계 최장 컨틸레버라는 유일무이한 구조로 설계됐고, 지열과 태양열을 이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혁신적 조형물이 그에 걸맞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이 2010년 일찌감치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될 만큼 화려했던 출발치고는 제자리걸음에 가깝다.
전 세계 수많은 리더들을 만났던 ‘외교 전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위대한 지도자는 비전과 일상의 간격을 메워주는 교육자여야 한다”고 했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위기가 몰려오는 시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켜 당면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 지향하는 가치를 이뤄내는 ‘디자인 도시’ 서울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