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최저임금 차등화’는 소모적 논쟁

입력 2024-06-12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기업 현실 감안해 적용 필요하지만
노동계·공익위원 반대로 실현 불가
차라리 경영 혁신 촉진에 활용하길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를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의 공방이 치열하다. 경영계는 지불능력이 부족한 영세사업주들의 경영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최저임금제도 취지가 노동자의 생활안정에 있는 만큼 임금 수준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경영계가 차등적용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높은 ‘최저임금 미만율(미준수율)’이다. 경영난을 겪는 영세중소기업이 많은 상황에서 단일 최저임금 결정이 별 의미가 없고 그림의 떡이란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최저임금을 못받은 근로자는 301만1000명으로 미만율이 13.7%에 달했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업종별로는 가사관리사가 주로 속한 ‘가구 내 고용활동업’의 미만율이 60.3%로 가장 높고 농림어업(43.1%)과 숙박·음식점업(37.3%)의 미만율도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의 84.4%는 30인 미만 영세중소사업체에 종사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매년 최저임금위원회 회의가 열릴 때마다 차등적용 문제는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에서도 지불 여력이 부족한 편의점업, 음식·숙박업, 택시운송업에 차등적용하자는 안건이 상정됐지만 부결됐다.

차등적용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은 거세다. 최저임금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한다는 최저임금제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차등화될 경우 기업 규모별, 업종별로 임금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고 생산성이 낮은 저부가가치 산업들이 구조개혁을 소홀히 할 수도 있다. 노동계가 “특정 업종에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면 인력난이 악화되고 해당 업종의 경쟁력만 낮추게 된다”고 지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오히려 현행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업종별 차별 적용, 수습 노동자 감액 적용, 장애인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제외 등 차별조장 조항들을 철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진국에서는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을 적용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가 단일 최저임금을 결정하면 산별노조나 지자체들은 이보다 같거나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게 보편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단일 최저임금보다 하향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물론 규모, 연령, 숙련도를 감안해 차등적용하는 나라가 없지는 않다. 주별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고 있는 미국 연방정부는 11인 이상 기업과 10인 이하 기업에 대해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한다. 캘리포니아주는 근로자 26명 이상 사업장과 이하 사업장을 분리해서 적용한다.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에선 연령이나 숙련도에 따라 최저임금을 감액한다. 나이와 업종, 지역에 따라 고용 요건과 고용주의 지급 능력이 다른데 전국 모든 사업장에 똑같은 최저임금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988년 도입된 우리나라 최저임금제는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결정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이고 지금까지 단일 최저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여러 차례의 경제위기에서도 단일 최저임금을 고수했는데 이제 와서 기업들의 경영난을 들먹이며 서로 다른 수준의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단일 최저임금은 기업들의 구조개혁을 유도하는 데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저생산성 기업들은 임금지불에 부담을 느껴 자동화 등의 경영혁신을 통해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덴마크 스웨덴이 최저임금을 크게 올려 저임금 사업장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시킨 경험이 있다. 단일 최저임금은 일정수준 이상의 임금지급을 강요하기 때문에 이중구조개선에도 어느정도 도움을 준다.

지금 우리나라 영세사업주들의 지불능력을 감안하면 차등적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노동계와 중재자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들의 반대로 인해 차등적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차등적용은 소모적 논쟁을 유발할 뿐이다. 그렇다면 부실기업의 경영혁신을 유도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단일 최저임금을 유지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어떤 주담대 상품 금리가 가장 낮을까? ‘금융상품 한눈에’로 손쉽게 확인하자 [경제한줌]
  • 2025 수능 시험장 입실 전 체크리스트 [그래픽 스토리]
  • "최강야구 그 노래가 애니 OST?"…'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를 아시나요? [이슈크래커]
  • 삼성전자, 4년 5개월 만 최저가...‘5만 전자’ 위태
  • 고려아연, 유상증자 자진 철회…"신뢰 회복 위한 최선의 방안"
  • 재건축 추진만 28년째… 은마는 언제 달릴 수 있나
  • 법원, 이재명 ‘공직선거법 1심’ 선고 생중계 불허…“관련 법익 종합적 고려”
  • ‘음주 뺑소니’ 김호중 1심 징역 2년 6개월…“죄질 불량·무책임”
  • 오늘의 상승종목

  • 11.1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24,389,000
    • +0.32%
    • 이더리움
    • 4,517,000
    • -3.69%
    • 비트코인 캐시
    • 588,000
    • -5.62%
    • 리플
    • 952
    • +5.08%
    • 솔라나
    • 296,000
    • -2.21%
    • 에이다
    • 766
    • -8.04%
    • 이오스
    • 772
    • -1.91%
    • 트론
    • 250
    • +0.81%
    • 스텔라루멘
    • 178
    • +4.71%
    • 비트코인에스브이
    • 78,100
    • -7.08%
    • 체인링크
    • 19,170
    • -5.47%
    • 샌드박스
    • 400
    • -5.66%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