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간전력망 확충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의 21대 국회 처리가 물 건너갔다고 한다. 어제 연합뉴스에 따르면 특별법 제정안은 국회에 제출돼 있으나 지난주까지 관련 상임위 법안소위 문턱도 넘지 못해 21대 임기 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전력망 확충의 중요성에 반하는 입법 횡포다.
특별법안은 전국 곳곳에서 지역 민원 등으로 지체되는 송전선로 건설을 촉진할 묘방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가 차원의 지원체계를 가동하는 골자의 법안을 확정했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전력망확충위원회를 만들어 입지 선정과 갈등 조정, 맞춤형 보상 등에 적극 개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평균 13년 걸리는 송전선로 건설 기간을 30% 줄인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송전선로 건설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기간이 줄면 각종 비용이 줄어들고 관련 경쟁력은 높아진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도 같은 리듬을 타게 마련이다. 국가 기간전력망이 성공적으로 확충되면 덩달아 국제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꿈은 물거품에 그치게 됐다.
전력망 확충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는 것은 입법부 빼놓고는 다 절감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최대 전력은 처음으로 100GW(기가와트)를 넘었다. 2051년에는 두 배가 넘는 202GW로 치솟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전력망 건설은 쉽지 않다. 영호남은 물론이고, 강원 충청권에서도 산업 수요에 대기 위한 발전량은 급증하는데 송배전망 건설은 지체돼 적자에 빠진 민간 발전회사들이 한국전력거래소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만 TSMC의 일본 구마모토 공장 건설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TSMC가 착공에 들어간 것이 2022년 4월인데 준공이 된 것은 2024년 2월이다. 일본 정부를 비롯한 전 사회가 반도체 공장 완공을 착공 1년 10개월 만에 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도왔다. 전력망 문제도 처리됐다. 국내에서도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력망만 봐도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특별법이 필요하고, 전력망확충위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국회는 들은 척 만 척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국운이 달린 미래 성장동력이 걱정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완공된다. 삼성전자는 2026년부터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시작한다. 문제는 수도권 사용 전력의 4분의 1인 10GW 이상의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전력망으론 뒷감당이 어렵다.
주요국들은 정부가 전력망 구축에 나설 수 있도록 법제를 정비했다. 독일은 10여 년 전에 특례법을 만들어 법적 분쟁 절차를 간소화하고 보상을 강화했다. 미국은 2021년 인프라법을 통해 정부의 강제 승인 근거를 마련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전력망이 워낙 중요하니 다들 이런 것이다. 왜 우리만 다른가. 왜 송전선 위치 선정에 6년이 걸리고, 반도체 공장 건설엔 ‘빨라야 8년’인가. 우리 첨단산업에 과연 미래가 있나. 정치권은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