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이 제정된 지 약 17년이 지났지만, 일상에서 장애인이 받는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비스와 취업 등 여러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에 맞서 다수의 소송이 제기된 가운데 법원은 장애를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일관된 판단을 내놓고 있다.
2015년 5월 에버랜드에 방문한 김모 씨 등 시각장애인 3명은 놀이기구 탑승을 거부당했다. 에버랜드의 놀이기구 이용 관련 안전수칙에 ‘신체적·시각적 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이용이 제한되거나 동반자의 동승이 요구될 수 있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김 씨 등은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이용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명시하는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된다”며 에버랜드 운영사인 삼성물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에서는 ‘장애를 사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는 경우’를 장애인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제15조는 ‘제화·용역 등의 제공자는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이 아닌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수준의 편익을 가져다주는 물건, 서비스, 이익, 편의 등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에버랜드 측은 “자유이용권에 ‘손님의 안전을 위해 시설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고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놀이기구 이용을 제한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별 행위에 따른 시정조치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고의나 과실이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2018년 1심은 “현장 검증까지 진행한 결과 시각장애인 역시 별다른 이상 없이 놀이기구들을 이용할 수 있다”며 김 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또 삼성물산이 김 씨 등 3명에게 각각 200만 원씩 지급하고 안전 가이드북 문구 중 ‘시각적’이라는 부분을 삭제하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2심도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지체·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박모 씨는 2022년 9급 공채 법원사무직렬 장애인 구분모집 전형에 지원했다. 필기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이후 심층면접 전형을 치른 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박 씨는 “법원행정처가 모집 공고에 편의지원 제공 기준을 안내했으나, 언어장애에 관한 것은 포함돼 있지 않았고 면접 시험에서 편의지원이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면접위원이 ‘발음이 좋지 않은데 일을 할 수 있을지’ 등 직무와 관련이 없는 발언을 했다”며 법원행정처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1월 서울행정법원은 박 씨의 승소로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편의 제공에 관한 공고를 적절하고 충분하게 하지 아니하거나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아니한 탓에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했다면 이는 장애인복지법령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박 씨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함과 동시에 정부가 박 씨에게 위자료 500만 원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정신장애 3급 현모 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20년 6월 화성시 9급 일반행정 장애인 구분모집 전형에 지원한 현 씨는 유일한 필기 합격자였다. 다만 면접에서 장애의 유형과 장애 등록 여부, 약 복용 여부 등 장애와 관련된 다수의 질문을 받은 뒤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현 씨는 2020년 12월 화성시 등을 상대로 불합격 처분 취소 및 500만 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추가 면접시험에서 차별 행위가 시정됐다”며 현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2심은 “최초 면접시험에서 면접위원들이 원고에게 직무와 무관한 장애 관련 질문을 한 행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하고 위와 같은 질문을 통한 면접위원의 판단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올해 1월 2심과 동일하게 화성시 등에 현 씨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고용 과정에서의 차별금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공정한 참여 및 경쟁의 기반을 마련해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장애인 채용 면접 시험에서도 이 취지는 최대한 반영돼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