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양치기 소년…금융산업, 정책 일관성·신뢰 지켜야” [WGBI, 환율 방파제④]

입력 2024-04-21 17:23 수정 2024-04-2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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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열린 2009년 SIBOS 현장.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 프로그레스 소프트웨어 부스 앞에서 세계 각국 금융투자업계 인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로그레스소프트웨어는 국내 코스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금융정보 기술 기업이다. (출처=프로그레스 소프트웨어)
▲홍콩에서 열린 2009년 SIBOS 현장.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 프로그레스 소프트웨어 부스 앞에서 세계 각국 금융투자업계 인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로그레스소프트웨어는 국내 코스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금융정보 기술 기업이다. (출처=프로그레스 소프트웨어)

2009년 9월 16일, 국제은행통신협회 SWIFT가 당시 아시아 최대 금융중심지인 홍콩에서 개최한 SIBOS(SWIFT International Banking Operations Seminar) 국제 총회. 금융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 자리에는 150여 개 국가에서 8000명이 넘는 금융·증권업계 고위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 각국 금융 CEO(대표이사), 기관투자자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삼삼오오 모여 글로벌 금융업계의 교류와 협력을 다졌다.

그 사이에서 기대감에 들뜬 표정으로 발표 순서를 기다리는 한 무리가 있었다. 한국에서 온 기획재정부와 한국예탁결제원 관계자들이었다. 세계 최대 국제예탁결제기구(ICSD)인 유로클리어(Euroclear)와 계약을 마치고 다음 달부터 시행될 외국인 국채통합계좌를 기념해 주요 국제 금융인사들 앞에서 오프닝 세리머니와 함께 한국 국채투자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기재부 한 고위 관계자는 그날을 회상하며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개시해 놓고, 1년 3개월 만에 결정을 뒤집어 버리니 국제적 ‘양치기 소년’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며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게 정책 일관성과 신뢰인데 한국은 그걸 공식적으로 파기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한순간에 불신을 얻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이번 국채통합계좌 시행은 처음이 아니다. 2009년 10월부터 유로클리어와 국채통합계좌를 운영했지만, 이듬해 12월 폐지했다. 폐지 이유는 표면상 자본유출입에 따른 변동성 확대였지만, 근본적 원인은 ‘관치금융’이었다. 외국인의 채권 투자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달러화가 국내 채권시장으로 과다 유입되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회에서 ‘왜 한국인은 세금 받고 외국인만 비과세하냐’라고 걸고 넘어지니까 곧장 폐지됐다. 외국인 투자가 이토록 중요한 나라에서 달러 유입을 막겠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라며 “(외국인들은) 이미 자기 나라에서 과세를 하는데 우리가 이중과세를 받겠다면 투자할 외국인이 어디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비과세 제도는 국채통합계좌 운영을 위한 핵심으로 꼽힌다. 국내 채권시장에는 국채 보유기간에 따른 과세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의 보유 기간에 따라 채권 이자에 과세가 매겨진다. 보유 기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엔드인베스터(최종투자자)가 보유 이력을 일일이 명시해야 한다.

그러나 ICSD의 국채통합계좌는 투자자 이력이 ‘다층 구조’로 설계됐다. 해당 채권을 과거에 보유했던 투자자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채권 보유기간도 알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보유 기간에 따라 과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외국인 국채 과세가 부활하자 국채통합계좌는 결국 2010년 말 문을 닫았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별도의 사전 등록절차 없이 투자자가 드러나지 않는 게 기본”이라며 “포지션 노출을 가장 기피한다.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게 정책 일관성과 신뢰인데 한국이 이걸 엎어버리니 한국 자본시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를 받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국채통합계좌를 통한 외국인 국채 투자에 대해 이자·양도소득 비과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클리어스트림에 이어 유로클리어까지 적격외국금융회사(QFI) 승인을 모두 마쳤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채통합계좌를 이용하려면 국세청의 QFI 승인을 받아야 이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9월 WGBI 편입을 결정짓는 요소 역시 이러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본다. 국채통합계좌, 외환시장 개방 등 외국인 투자 편의를 높이는 조치가 재개하더라도 과거처럼 하루아침에 뒤바꾸는 사례가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WGBI 최종 편입 여부는 FTSE러셀의 정성적 판단이 작용한다는 점도 확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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