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분통 터져"
금융감독원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분쟁조정기준안을 제시한 이후 은행들의 자율배상이 시작되고 있지만 증권사들의 관련 배상 계획이 나오지 않아 가입자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증권사 역시 불완전판매 여지가 있는데도 관련 절차 안내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증권사들은 판매 규모가 작은 데다 온라인 판매가 대다수를 차지해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개별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신한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 6곳 중에서 자율배상 계획이 있거나 관련 절차에 돌입한 곳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증권사는 금감원이 현장검사와 민원조사를 실시한 곳들이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11일 홍콩 지수 ELS와 관련해 불완전판매 정황이 확인된 판매사들에게 분쟁조정기준안을 제시했다. 판매원칙 위반 여부, 내부통제 부실 정도를 따져 판매자 요인(23~50%)을 고려한 뒤 ELS 투자경험, 금융상품 이해도 등 투자자 요인(±45%)을 가감해 개별 투자건별로 배상비율을 정하도록 했다.
은행은 자율배상위원회, 이사회 등을 열고 자율배상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이미 배상금을 지급했다. KB국민은행은 가입자들에게 자율조정 시행 안내를 시작했고 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도 배상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배상 관련 안내를 아예 받지 못한 증권사 가입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상품의 위험성 고지, 대리 가입 등 불완전판매 여지가 있어 은행 가입자와 비슷한 피해를 겪었지만 증권사를 통해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율배상 절차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50대 가입자 이모씨는 지난 2021년 1월과 2월 미래에셋증권 대치지점을 통해 홍콩(H) 지수 ELS를 가입했다가 각각 50%가 넘는 손실을 봤다. 이씨는 "수년간 거래를 하던 지점에서 직원이 전화를 해 '해당 ELS 상품은 단 한 번도 원금 손실이 난 적 없다'고 가입을 권유했다"며 "수차례 안전하다는 설명을 듣고 가입 의사를 밝히자 계좌 정보와 비밀번호 등을 알고 있던 해당 직원이 저 대신 온라인으로 가입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금감원의 분쟁조정안 발표 이후 해당 증권사로 배상 관련 문의를 수차례 남겼지만 "아직 이사회가 열리지 않아 결정된 게 없다", "일단 금감원 민원을 접수하라"는 형식적 답변을 들었다. 그는 "분쟁조정안에 증권사도 포함이 됐는데 자율배상 논의는 은행권에서만 다뤄지고 있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2021년 5월 신한투자증권 지점을 통해 H지수 ELS에 가입한 60대 김모씨도 손실률이 44%를 넘었다. 김씨는 "내가 이 돈은 전세금이라 절대 원금을 잃으면 안 된다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지점에서 당시 H지수 ELS를 원금보장 상품으로 안내했다"며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손실 없다', '홍콩이 잘못돼도 중국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니 원금이 잘못될 일 없다'는 설명에 가입했다가 일상이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금감원과 증권사에 불완전판매 관련 민원을 넣고 물어봐도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대신증권 지점을 통해 가입한 40대 정모씨는 "위험성, 손실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고 원금이 보장된다는 설명에 가입했는데 절반 가까이 손실을 봤다"며 "금감원의 조정안이 나왔는데 증권사에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게 가장 분통이 터지는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소한 앞으로 배상 원칙이나 절차가 이렇게 된다는 설명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증권사는 민원 규모가 크지 않아 개별로 검토하고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초 증권사는 판매규모가 적고 일괄 지적사항이 확인되지 않아 책임 소지가 은행보다는 작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해 말 기준 홍콩 H지수 ELS 판매잔액 총 18조8000억 원 중에서 은행은 15조4000억 원을 차지한 반면 증권사는 3조40000억 원에 그쳤다. 또 은행은 오프라인 판매 비중이 90.6%에 달한 반면, 증권사는 온라인 비중이 87.3%로 대부분 비대면으로 판매가 이뤄졌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들어오는 민원을 추려서 검토하고 개별 배상을 논의해볼 것"이라며 "규모가 크지 않아 이사회나 자율조정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은 현재로써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는 판매 규모 중 90%는 온라인 판매라 부실 설명 책임 소지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투자 위험성을 아는 사람들, 재가입자가 대다수 증권사를 통해 가입하다 보니 불완전판매 정황도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