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규정 없어 아무도 규제하지 못해
노조법 개정 통해 기준 명확히 해야
선거운동 자유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듯
노조 활동할 수 있고 없는 일 경계 둬야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법에 정할 때”
그런데 노동법에서는 해당 기업과 무관한 사람이 사무실이나 작업 현장에 출입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2021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되면서 들어온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제도가 그것이다. ‘비종사 조합원’이란 특정 사업장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을 지칭한다.
이 법에 의하면 그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노동조합원도 회사 내에 들어와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다. 주로 해당 기업 근로자가 아닌 상급단체(예컨대 OO노총) 간부가 사업장을 방문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제도라고 한다.
문제는 조합원 자격이나 해당 기업과의 관련성에 대해 법조문상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데 있다. 법조문대로라면 아무 노조든 조합원이기만 하면 임의의 사업장에 출입을 요구할 수 있고, 사업장에 들어와 조합 활동을 할 수 있다.
조합 활동의 범위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라는 추상적인 제한만 있어서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는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정말이다. 일반 사무직 종사자들은 이게 사실이라는 걸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생산 현장에선 이미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실제로 기업 현장에서는 ‘비종사’ 조합원의 출입 요구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해당 기업과 관련이 없는 노동조합인데도 하청 근로자와 관계가 있다는 사유로 출입을 요구하여 조합 활동을 한다.
노조 가입 신청을 받기 위해 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마저 있다. 아예 업무시간 중에 조합 활동을 하거나, 혹은 업무시간 종료와 동시에 조합 활동을 해야 하므로 업무시간 중에도 미리 들어와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조문에 버젓이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적혀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무작정 금지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출입을 허용하면 들어와서 확성기를 켜고 천막을 설치하고 노동가요를 틀고 현수막을 붙인다. ‘조합 활동’을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출입을 금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고소‧고발을 하거나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다.
처음에 이 법이 적용된 건 형사 사건이다. 노동조합 상급단체 간부가 사업장에 출입해 조합 활동을 한 행위가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지 문제된 사건에서, 개정 노동조합법 취지를 고려하면 유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게 시작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민사소송으로까지 법적용 범위가 넓어지며 노동조합(상급단체) 간부들이 적극적으로 출입을 허용하라고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사용자를 고소‧고발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2021년 노동조합법 개정 당시 원래 정부안에는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사용에 관해 노사 간 합의된 절차 또는 사업장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이 부분이 빠지게 됐는데, 당시 정부 설명에 따르면 사업장 규칙 준수 부분은 이미 판례로 인정되는 당연한 내용이고 또한 규정 문언이 복잡한 점을 고려해 삭제됐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장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당연한 제한이 법조문에 명시되지 않음으로써, 현장에서는 쉽사리 대처하기 어려운 갈등의 소지가 생겨버렸다.
‘필요하다’라는 이유로 무엇이든지 할 수는 없다. 다양한 권리와 이익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조화로운 해결이 중요하다. 선거운동이라는 중요한 목적을 위해서도 아무 활동이나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노동조합 활동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경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 해결을 당사자에게만 맡겨 놓거나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법에 정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