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피고인들 한 달 넘게 갇혀 있어”…기소 시점 지적도
수사 정보를 대가로 돈을 주고받은 혐의로 구속된 검찰 수사관과 SPC 임원의 재판에서 법원이 검찰의 재판 준비 상태를 지적했다. 검찰이 ‘핵심 공범’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피고인 측의 수사기록 열람을 거부하면서 재판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허경무 부장판사)는 29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백모 SPC 전무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검찰 수사관 김모 씨의 첫 공판을 열었다.
통상 첫 공판에서는 검사가 공소사실(혐의) 요지를 설명하고 피고인 측은 이에 대한 입장을 설명한다. 하지만 검찰이 변호인들의 수사기록 열람과 복사 등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이날 재판은 공전됐다.
이에 재판부는 “구속기소한 상태에서 수사기록 열람 등사를 거부한 이유가 무엇인지 검찰 입장을 들어봐야겠다. 단순히 ‘관련 사건 수사 중’이라고 거부할 수 있나”라며 “구속기간 다 지나갈 때까지 수사가 안 끝나면 재판 진행은 못 하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검찰은 “‘핵심 공범’이 확인돼 3월 중순부터 소환해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출석하지 않거나 건강상태를 이유로 바로 퇴청했다”며 “다음 주 소환하면 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검찰이 언급한 핵심 공범은 허영인 SPC 회장으로 보인다. 허 회장은 이달 18일부터 검찰의 출석 통보를 받았으나 업무 일정 등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이후 25일 검찰에 출석했지만, 조사 1시간 만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불구속 기소도 아니고 피고인들은 한 달 넘게 수사기록도 못 받고 갇혀 있었다는 건 문제”라며 “기소 시점을 잘못 선택한 것 아닌가. 수사기록을 계속 열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고인들을 구속할 명분도 없다”고 추궁했다.
검찰은 “기소 시점까지 배후에 있는 사람이 명확하게 발견된 건 아니었고, 수사를 진행하면서 확보한 사실이 생각보다 깊고 넓어 부득이하게 지연됐다”며 “빨리 수사팀과 협의해 다음 주에는 결정해서 피고인들의 방어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백 전무는 평소 친분이 있던 검찰수사관인 김 씨에게 SPC그룹 관련 수사 정보 유출을 청탁하며 620만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김 씨는 압수수색영장 청구 사실, 수사 진행상황 등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은 혐의다. 두 사람은 지난달 6일 구속기소됐다.
허 회장은 2019년 7월~2022년 8월 SPC그룹 자회사인 PB파트너즈에서 민주노총 노조원들을 상대로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승진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검찰수사관을 통해 수사 정보를 빼돌린 과정에 허 회장이 관여했는지도 수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