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들이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는 필수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분석했다.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지 않는다면, 전공의들의 업무 복귀를 설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한외과의사회는 10일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스위스호텔에서 개최한 춘계학술대회에서 ‘기피과가 제기하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의 문제’ 정책토론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외과의들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로 필수과와 지역의료를 강화할 수 없으며, 의료 환경이 훼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한다는 계획과 함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확보, 보상체계 정비 등을 위한 개선책이 담겼다. 비수도권에 근무하는 의사를 늘리고, 의사들이 의료행위와 관련해 법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계획이다. 수가를 조정하고, 혼합진료를 일부 제한해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이 유입되도록 한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정책의 주요 수혜자로 지목되는 외과 의사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외과는 내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와 함께 대표적인 ‘기피과’로 꼽히는 분야다.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의 집중 지원 대상이 오히려 지원을 마다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현재 의료 환경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정책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민호균 대한외과의사회 보험이사는 의료분쟁에 대한 대책을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전공의들의 빈자리에 진료지원(PA) 간호사들을 투입하면서 의료사고 발생 시 면책을 약속했다”라며 “하지만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의 일부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사가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한 경우에 한해 의료사고에 대한 공소 제기를 면제해주고,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사의 과실로 환자가 사망하면 형을 감면해준다”라며 두 정책을 비교했다.
이어 “간호사의 의료사고는 면책이고, 의사의 의료사고는 감면에 그친다”라며 “처음부터 같은 잣대로 정책을 구상했다면 현재와 같은 혼란까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필패’라는 것이 외과의사들의 진단이다.
이재만 연세본정형외과원장은 “응급실에 실려 온 흉통 환자에 대해 전공의가 대동맥 박리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는 상황”이라며 “의사들이 범죄자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교수, 전임의, 전공의들은 생명을 다루는 분야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미용 의사와 필수과 의사의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급여와 비급여 진료를 분리해 논의하면서 비필수 미용 시술을 시행하는 의사들을 폄훼하고 있다는 우려다.
민 이사는 “필수과와 미용 의사들 사이에 경쟁 유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라며 “현재 전공의는 모두 MZ세대이기 때문에 의료 행의 자체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전공의도 정부의 정책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홍재우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는 “필수과를 ‘낙수과’라고 부르는 상황에 대한 충격이 크다”라고 말했다. 홍 전공의는 지난달 13일 개인 유튜브 계정을 통해 ‘결의’라는 제목의 영상 게시하고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홍 전공의는 사직 및 휴학 중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향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조정할 여지가 없다고 못을 박아놓은 상태에서는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현 상황을 유발한 정책들을 모두 백지화하고, 의료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화 기구를 만들어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