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셨군요. 혹시 성당 입구에 있던 곳이 그곳인가요?”
“맞아요, 그곳에서 시신을 안치하고 염습했어요.”
“그런데 아까 보니 문이 닫혀 있는 것 같은데 이제는 운영을 안 하나봐요?”
“네. 그때 열심히 활동했던 신자들도 이제는 연세가 많아지고, 몸이 힘들어서 운영하기 힘들게 됐어요. 또 염습을 하려면 장례지도사 자격증도 필요한데, 젊은 사람들 중에 하려는 사람도 없어 점점 맥이 끊기네요. 코로나 이후로는 방역 지침으로 성당에서 염습과 장례식을 진행하는 것도 어렵게 됐죠. 지금은 장례식장에 방문해서 기도하는 봉사만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성당에서 죽음이 멀어진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 죽음을 마주할 때 신앙이 큰 힘이 되는데….”
인간은 태생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교는 오래전부터 각자의 신과 교리로 인간이 죽음 공포를 극복하도록 도왔다. 내세를 통하여 이번 생이 끝이 아님을 말하고, 남은 이들의 사별의 슬픔을 위로했다. 또 죽음을 통하여 이번 생에 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종교는 죽음에서 멀어져 삶을 간구한다. 돈과 출세와 복을 기도하고 발원한다. 기복의 기도가 넘쳐난다. 골목마다 십자가가 솟아있고, 산마다 사찰이 자리잡고 있지만, 매일 30여 명의 사람들이 절망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고독사로 매일 10명의 사람들이 쓸쓸히 삶을 마무리한다. 아픈 죽음이 넘쳐난다. 종교가 이들의 삶을 위로하고 죽음을 배웅해줄 수는 없을까? 종교마다 신자와 성직자가 줄어든다고 걱정을 표한다. 어쩌면 그 이유는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에서 종교가 멀어진 탓이 아닐까 싶다.
강원남 행복한 죽음 웰다잉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