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스트 셀러 ‘사피엔스’ 의 작가 유발 하라리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생산성 향상으로 식량은 급격하게 늘었지만 동물의 가축화로 질병이 창궐하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중노동에 시달려야 하고, 빈부격차 심화, 계급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농업혁명은 ‘사기’이자 인간에겐 덫이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200여 년간 지속시켜준 원동력이 경제성장이었고, 이를 가능케 했던 힘이 바로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에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생산성 향상’ 은 역사 발전의 견인차로 간주돼 왔다.
21세기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시대를 맞아 최근 미국에서 이 같은 믿음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를 넘어 줌(Zoom)으로 상징되는 원격근무 형태의 보편화와 AI혁명을 맞았음에도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뚜렷한 방증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 중반. 그때까지만 해도 반도체 기술 혁신과 컴퓨터 보급, 기업들의 정보통신 부문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으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클라우드 컴퓨팅, 인터넷, 휴대폰 보급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전반기 생산성은 크게 늘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도 물류와 소매업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 주었지만,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팬데믹 이후에도 원격근무가 일반화되고, 줌 등 혁신적인 통신수단이 활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에 미친 영향은 미지수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최근 원격근무가 장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진단을 내놨다. 사무직 업무에는 혁신적인 향상을 가져다 주겠지만 아직 일반화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양극화, 분배의 불공정성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은 가격을 올리거나 수익성 면에서 손해 보지 않고도 더 나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논리가 AI혁명시대인들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특히 봉급쟁이들은 AI혁명이 생산성을 높여주더라도 “공정한 분배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과실은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생산성 증가가 임금증가를 앞질러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수혜대상에서 배제돼 왔기 때문이다. 근로자들로서는 AI 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증가는 직원의 대량해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먼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생산성 증가로 인한 낙수효과는 고작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자본가나 주주들에게 돌아갔다. 그 쓰라린 경험이 근로자들로 하여금 생산성 향상을 순수한 시각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AI혁명은 21세기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임과 동시에 희망이다. 그러나 철저한 통제와 견제 장치가 없으면 생태계 파괴와 양극화, 소득 불평등 같은 함정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막대한 풍요를 구가하게 됐지만 정작 인간은 이전의 수렵채집기보다 훨씬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왔다는 유발 하라리의 역사 해석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Wanseob.k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