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독보적인 입지를 굳힌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판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납품단가 마진율 협상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다가 쿠팡을 떠난 제조사들이 하나둘 중국계 이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알리)에 잇달아 입점하고 있어서다. 한국제품 전문관 ‘K베뉴’ 판을 벌린 알리는 국내사에게 입점·판매수수료를 모두 면제하는 ‘파격 카드’를 내밀며 파이 키우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22일 이커머스업계에 따르면 존슨앤드존슨은 이달 말부터 알리 K베뉴에 공식 스토어를 열었다. 존슨앤드존슨은 자사가 지정한 공식 벤더사를 통해 알리에 입점했다. 벤더사는 알리 K베뉴에서 구강청결제 ‘리스테린’을 비롯해 ‘아비노’, ‘뉴트로지나’ 등 존슨앤드존슨의 대표 헬스앤뷰티(H&B)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앞서 켄뷰코리아(한국존슨앤드존슨의 소비자·헬스사업 부문)는 작년 6월 쿠팡과 거래를 중단했다. 쿠팡과 납품단가 등 마진율을 놓고 갈등을 빚은 탓이다. 이에 존슨앤드존슨은 현재까지 쿠팡에 자사 상품의 직접 납품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쌍용씨앤비(C&B)도 알리에 최근 입점해 갑티슈, 두루마리 휴지 등을 판매 중이다. 쌍용C&B는 2022년 11월 쿠팡과 직매입 상품 마진율 협상 도중 쿠팡에 발주 중단 통보를 받은 바 있다.
LG생활건강(LG생건)도 작년 11월 알리 K베뉴에 입점해 샴푸, 세제 등 생활용품을 판매 중이다. LG생건 역시 최근까지 수년 간 쿠팡과 납품단가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업체다. 지난달 LG생건과 쿠팡은 전격적으로 로켓배송 직거래를 재개했으나, 2019년부터 5년 간 거래를 끊은 바 있다. 당시 쿠팡은 LG생건이 자신들이 요구하는 납품단가 인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결국 직매입 거래를 끊었다.
국내 업체가 속속 알리에 입점하는 것은 알리의 ‘파격 유인책’이 주효하다. 알리는 올해 들어 K베뉴 사업을 강화하면서 ‘수수료 면제’를 내걸었다. K베뉴 입점을 희망하는 국내 판매자에게 입점수수료와 판매수수료를 면제하는 게 핵심이다. 이미 K베뉴에 입점한 업체에게도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이커머스 업계는 알리가 K베뉴를 통해 생활용품, 가공식품을 넘어 신선식품까지 취급할 것으로 본다. 현재 알리의 모기업 알리바바그룹은 신선식품 카테고리 관리 인력을 채용 중이다.
그동안 납품가 협상으로 쿠팡과 갈등을 빚은 국내 제조사가 알리와 잇달아 손을 잡으면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이상 기류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제조사 입장에서 수익률이 떨어지는 쿠팡 대신 알리를 택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마진율 협상으로 인해 쿠팡과 아예 관계가 틀어져버린 CJ제일제당의 알리 입성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2022년 11월 쿠팡은 CJ제일제당과 마진율 협상이 결렬되면서 CJ제일제당 상품 발주를 중단했다. 이후 CJ제일제당은 자사몰 강화, 익일배송 서비스인 내일 꼭! 오네(O-NE) 등을 내놓으며 ‘탈(脫)쿠팡’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직구를 제외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당장 알리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알리의 판매 경쟁력이 지금보다 더 커진다면, 그동안 울며 겨자 먹기로 쿠팡에 입점한 중소제조사의 새로운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