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문제 등 한·일 관계 이용 경계해야
자민당 내 각 파벌이 매년 개최하는 자금파티에서 모인 정치헌금 중 정치자금관리법에 위반하는 사례를 자민당의 거의 모든 파벌이 저질렀다. 일본 정치에서 파벌이라는 것은 한국의 계파와는 다르다. 말하자면 파벌은 정당 내의 작은 정당과 같다. 각 파벌에는 회장, 부회장이 있고 총무가 있고 회계책임자가 있다. 파벌에 대한 참가, 탈퇴 모두 절차가 있다. 파벌은 신인 국회의원에 대한 교육을 맡고 파벌의 독자적인 정책을 제안할 수 있다. 자민당에는 이런 파벌이 6개 있었고 파벌에 속하는 국회의원들이 300명 정도다. 파벌에 속하지 않는 의원은 약 80명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비자금 사건이란 다음과 같다. 파벌에 속하는 의원들은 매년 파벌이 개최하는 파티에 참가할 수 있는 1장당 2만 엔(약 18만 원)의 입장권을 의원 1인당 200~300장 정도 지인이나 아는 단체에 팔아야 한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자신의 할당량을 넘게 입장권을 판 경우 많은 파벌이 그 초과금액을 해당 국회의원에게 환원해 준 것이 문제가 됐다. 그리고 적어도 그 금액을 파벌의 수지보고서에 기재해야 하는데 기재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이번의 문제의 핵심이었다. 즉, 정치자금법 위반이 된 것이다.
그 금액은 과거 5년간에서 아베파가 약 6억 엔, 니카이파가 약 3억 엔, 기시다파가 약 3000만 엔이었다. 다른 파벌(아소파, 모테기파, 모리야마파)은 모두 의원 개인이 정치자금 장부에 기재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만, 액수가 크지 않아서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검찰은 아베파, 니카이파, 기시다파의 회계책임자를 입건했지만, 의원들은 무혐의로 마무리했다. 국민은 납득하지 않았고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원들, 특히 아베파의 5명 집단 지도층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인의 감각으로 보면 아베파 96명의 비자금 6억 엔이 우리나라 돈으로 56억 원정도로 한 명당 6000만 원 정도이기 때문에 최근 ‘50억 클럽’이 화제가 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액수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일본은 의원이 자금에 있어서 정직하지 못했다면 치명적이다.
특히 의원은 여러 가지 특권이 있다는 것을 일본국민은 다 잘 알고 있다. 일본 의원들의 특권은 한국 국회의원들의 특권과 대단히 비슷하다. 세비는 양쪽 다 1년에 1억5000만 원정도이고 국내 고속철도와 항공기는 무료, 보좌관 봉급은 국고에서 나온다는 점도 같다. 한국의 경우 보좌관은 7명까지 국고에서 지원이 있지만, 일본은 2명까지만 국고에서 봉급이 나온다. 기타 여러 가지 특권이 있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국회의원이다.
일본인들은 원래 특권이 있는 사람들이 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비자금을 조성해 그것을 개인용도로 썼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분노했는데 이번에도 기시다 내각과 자민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런 자민당과 자신의 위기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기시다파 해산’을 선언한 것이다. 아베파와 니카이파도 해산하겠다며 기시다 총리의 결정에 따랐다. 그러나 기시다파(47명)와 더불어 기시다를 총리로 만든 3대 파벌에 속한 아소파(56명)와 모테기파(55명)는 반발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아소파와 모테기파에 파벌 해산 이야기를 사전에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국민도 기시다 총리가 지난해 11월 기시다파를 탈퇴해 현재 기시다파의 회장도 아니면서 왜 기시다파를 해산한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결국 자신의 정권을 연명시키기 위해 해산선언을 한 것이 아니냐,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비자금 문제를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니냐 등 오히려 기시다 총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총리의 파벌 해산 선언에도 크게 상승하지 못한 상태다.
화가 난 아소파의 회장 아소 다로와 기시다 총리가 최근 2시간 넘게 회식 회동을 해 아소파는 정책집단으로서 존속한다고 합의를 했다. 이에 아소파의 분노는 일단 가라앉은 듯하다.
여기에 대해서도 국민은 파벌은 원래 정책집단인데 아소파가 정책집단으로 남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기시다 총리는 앞으로 파벌은 돈과 인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집단으로 남는다고 다시 설명했다. 현재까지 파벌은 자금과 인사문제가 있었다. 그중 인사문제는 총리를 만들어 낸 파벌이 여러 장관이나 차관 등 정부 인사를 배출할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을 없앤다는 이야기다.
기시다 총리로서는 내각 지지율을 올리고 그 타이밍으로 중의원을 해산, 총선거를 실시해 자민당이 승리하면 다시 자신이 총리가 되어 정권을 연명시킬 수 있다는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여론조사를 보면 무당파층이 60% 정도로 나와 있어 이 무당파층이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자민당의 오랜 집권이 1993년이나 2009년처럼 무너질 수 있다. 1993년은 리크루트 사건이라는 큰 비자금 사건이 터져 자민당에서 50명 이상의 의원들이 탈당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했다. 이에 비(非)자민당 연립정권인 호소카와 정권이 출범했다. 2009년에는 아소 당시 내각이 최저 지지율 9%대를 기록해 그 결과 8월 말 중의원선거에서 당시 민주당이 대승,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출범했다. 현재 자민당 상태는 1993년과 2009년 상황을 합친 대단히 안 좋은 상황인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낮은 지지율에도 중의원을 해산시키지 않고 임기대로 정권을 운영한다고 고집을 피우면 다음 중의원과 참의원 선거가 2025년 7월 이후여서 자민당은 그때까지 정권을 연명할 수 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로서는 올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는 그가 다시 총재로 선출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인데 일본의 내각책임제 특성상 기시다는 우선 총재로 다시 뽑혀야 국회에서 총리가 될 수 있다.
현재 일본 국민 여론은 차기 총리로서 이시바 시게루, 고노 다로, 고이즈미 신지로를 상위로 지지하고 있다.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를 노리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계속 맡아야 한다는 여론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는 자신을 총재와 총리로 만들어준 파벌을 해산시켜 버렸고 자신 편인 아소파와 모테기파의 노여움을 샀다. 이에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 다시 이런 파벌들이 자신을 후원해 준다는 보장이 없어서 그 이전에 중의원 해산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기시다 총리로서는 중의원을 해산시켜 총선에서 자민당을 승리하게 만들어서 그 기세로 다시 총재가 되고 총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 조건이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 상승이다. 현재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버릇이 든 기시다 총리가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어떤 술책을 쓸지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을 상대로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재개나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하는 데 동의를 얻으려고 하거나 우크라이나 지원을 일본보다 한국에 많이 하게 하기 위해 미국과 합의하는 등의 술책을 쓸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의 전격적인 수교 교섭에 나설 수도 있다.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말이 일본에 있어서는 일본 측 요구를 모두 한국 측이 수용한다는 뜻이어서 역설적으로 한국 측은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