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된 건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국에서 승리한 2016년이다. AI는 2년 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18에 주요 주제로 처음 등장했다.
그로부터 6년 후 열린 CES 2024는 AI 시대 원년 선포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AI는 우리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었고, 산업 경계를 허물었다.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4300여 개 기업이 참가한 ‘CES 2024’가 12일(이하 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CES를 주관하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는 총 13만5000명 이상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현대차·SK·LG 등 760여 개 기업이 기술력을 뽐냈다. 중국(1100여 개)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국내 기업들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AI를 접목한 기술과 제품을 잇달아 쏟아내며 맹활약했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모두를 위한 AI’를 내걸었다.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은 9일 열린 간담회에서 “올해 매일 사용하는 핵심 기능을 중심으로 생성형 AI를 적용하기 시작해 새로운 디바이스 경험으로 혁신할 계획”이라며 “올해는 AI 기능을 적극 도입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AI를 ‘공감지능’으로 재정의했다. 조주완 대표이사 사장은 “우리의 초점은 AI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변화를 일으켜 고객에게 실질적인 이점을 제공하는지에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번 CES에서 나란히 AI 반려 로봇인 ‘볼리’와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를 공개하며 일상에 파고든 AI 시대를 열었다.
AI는 가전은 물론, 뷰티와 보안, 반려동물 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냉장고에서는 식재료 입출고 시 카메라가 인식해 푸드 리스트를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 세탁물에 따라 한대 기기로 맞춤 세탁과 건조 기능도 지원한다.
뷰티도 AI로 진화했다. 프랑스 뷰티 기업 로레알이 공개한 ‘뷰티 지니어스’라는 앱은 AI가 이용자의 피부 사진을 보고 맞춤형 제안을 해주는 ‘뷰티 비서’다. 미국 스타트업 '님블뷰티'가 공개한 '님블 스마트 네일 살롱'도 주목받았다. AI와 로봇 기술 기반의 '님블 스마트 네일 살롱'은 손톱 모양을 스캔한 후 매니큐어를 칠해 주는 제품이다.
SKT가 공개한 ‘엑스칼리버’는 AI로 반려동물의 X-레이 판독을 보조해 수의사 진료를 돕는 진단 보조 서비스다. SKT 퀀텀 AI 카메라는 영상 내 화재 감지 및 행동 인식 등을 통해 침입자를 탐지하고, 화재 시 재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이 밖에 AI로 칫솔질을 향상시키고, AI가 코골이를 줄여주는 베개도 등장했다.
올해 모빌리티 업체들은 기존 자동차 개념에서 벗어나 미래를 책임질 신기술에 주목했다.
현대차그룹의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독립법인인 슈퍼널은 차세대 기체 ‘S-A2’의 실물 모형을 처음 공개했다. S-A2는 현대차그룹이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전기 수직 이착륙기(eVTOL)이다.
AI에 주목한 업체도 많았다. 삼성전자와 첫 공동 부스를 꾸리 하만은 디지털 콕핏 ‘레디 업그레이드’를 선보였다. AI 기술로 맞춤형 안전 운전을 지원하는 솔루션 ‘레디 케어’도 공개했다.
벤츠는 생성형 AI와 첨단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MBUX 가상 어시스턴트’를 선보였다. MBUX 가상 어시스턴트는 음성 지원 서비스와 고해상도 그래픽을 통해 운전자가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폭스바겐은 IDA 음성 어시스턴트에 챗GPT를 통합한 차량을 처음 소개했다.
재계 총수들과 경영진도 CES 현장을 쉴 새 없이 누비며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래 사업 구상에 나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개막 첫날부터 자사 부스뿐 아니라 국내 주요 기업 부스를 돌며 바쁘게 움직였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부스를 돌아본 후 인터뷰에서 “AI는 이제 시작하는 시대이며, 어느 정도 임팩트와 속도로 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국내 비(非)가전업체로는 처음으로 CES 기조연설자로 나선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AI·로봇으로 인류의 미래 건설 바꾼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AI 발전이 어디까지 왔는지, 전통 제조업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며 “AI 기술과 우리 비즈니스의 연계를 살피고 사업기회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구자은 LS그룹 회장,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 등도 주요 부스를 둘러보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