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례 ‘통신비밀보호법’상 증거능력 부정
“증거능력 부정 원칙에
예외가 인정된 바 없어”
학부모가 자녀 가방 속에 녹음기를 넣어 초등학교 교사의 아동학대 행위를 신고한 사건에서 대법원이 해당 녹음파일은 물론 녹취록까지 증거능력을 전부 부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녹음파일 등의 증거능력이 있음을 전제로 일부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한다”고 11일 밝혔다.
아동학대범죄처벌법은 아동 복지시설 종사자 등의 아동학대 행위를 가중처벌하고 있다.
2018년 서울 광진구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던 A 씨는 자신의 반으로 전학 온 학생에게 ‘학교를 안 다니다 온 애 같다, 학습 훈련이 전혀 안 돼 있다’는 등의 말을 해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A 씨의 이 같은 행위는 피해 학생의 학부모가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두면서 발각됐다. 피해 학생이 ‘A 씨로부터 심한 말을 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학부모는 상황을 파악하고 학대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녹음기를 가방에 넣었고, 이후 녹음 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1심에서는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범 예방강의 수강을 명했다. 이에 불복한 A 씨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선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A 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1심에 이어 2심 역시 ‘비밀리에 녹음한 부분은 위법 수집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부 발언은 초등학교 교사가 수업과 관련해 취할 수 있는 조치 내지 발언으로 보인다”라고 판시하면서도 피해 학생의 녹음기를 통해 몰래 녹음된 녹음파일‧녹취록 등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았다.
다만 1심이 유죄로 본 16회 중 14회 부분은 유죄로 판단하고, 2회는 무죄로 봐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벌금형으로 낮췄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초등학교 3학년으로, 스스로 자신의 법익을 방어할 능력이 없다”며 “녹음자와 대화자(피해자)를 동일시 할 정도로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다”고 증거능력을 인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해 아동의 부모가 피해 아동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두어 피고인의 교실 내 발언을 녹음한 녹음파일 등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면서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2항, 제4조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판시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할 수 없으며, 이를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파일 등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선례”라며 “이러한 녹음파일 등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원칙에 관한 예외가 인정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