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주도로 강행 처리된 일명 '쌍특검법'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오면서 여야가 다시 대치하고 있다. 특히, 공천 이후로 여당 의원들의 이탈표가 나올 수 있어 법안의 재표결 시점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12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인 9일 상정되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쌍특검법'의 재표결 등을 놓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달 28일 국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대장동 개발사업 '50억 클럽' 뇌물 의혹을 각각 수사할 특별검사 임명을 위한 법안 등 일명 '쌍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10년 이상 경력의 변호사 중 민주당과 정의당이 추천한 특검이 김 여사와 가족의 주가조작 의혹 등을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민의힘은 특검 추천권 행사 주체에서 배제됐다.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은 화천대유·성남의뜰 관련자들의 '50억 클럽' 의혹 관련 불법 로비와 뇌물 제공 행위, 사업자금 관련 불법 행위,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인지된 사건 등에 대해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정부는 5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쌍특검법에 대해 윤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안건을 의결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즉시 재가했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가 의결해 보낸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이 해당 법률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8일 만이다.
국민의힘은 9일 본회의에서 쌍특검법을 재표결해 법안을 폐기하겠다는 계획이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다시 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199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111석인 국민의힘 의원이 모두 반대표를 던질 경우엔 야당 의원들을 모두 끌어모아도 재의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쌍특검법이 9일 본회의에서 재표결을 거쳐 폐기될 경우, 여당은 법안이 총선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9일 재표결이 물리적으로 어렵다며 맞서고 있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상호 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 범위를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절차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지난 4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건희 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에게 헌법이 부여한 그 거부권에 부합하느냐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권한쟁의심판 청구 여부에 대한 의견을 계속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당은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총선까지 시간을 끌기 위한 속셈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은 7일 논평에서 "국회로 되돌아온 법안에 대한 재의결에 대해서 권한쟁의에 관한 법적 판단을 하고 난 뒤에 하는 것이 상식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상식을 내세우는 민주당에 묻는다. 의도와 내용, 방법 등 위헌성이 다분한 특검법안을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한 것은 상식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한쟁의심판의 결과까지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민주당도 알고 있을 텐데 총선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재표결 시점을 국민의힘에서 총선 후보 공천을 마친 2월 이후로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천 탈락 가능성이 있는 여당 내 현역 의원들의 이탈표를 기대하는 것이다. 재적 의원 298명이 전원 출석할 경우 181석의 야당 의원이 전원 출석하고, 국민의힘 의원 중에서 18석 정도의 이탈표가 나오면 3분의 2인 199석 이상을 충족해 재의결이 가능해진다. 앞서 지난달 28일 본회의 표결에서는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이 여당의 집단 표결 거부에도 본회의장에 남아 찬성표를 던졌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표결을 늦춘다는 건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법안이 국회로 오면 당연히 본회의가 처음 있는 날 표결하는 게 원칙이다. 그 원칙을 갖고 당당하게 표결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9일 본회의에는 쌍특검법 외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상정될 예정이다. 앞서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5일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 쟁점 사항 등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원내 과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9일까지 여야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현재 본회의에 부의된 특별법을 무조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