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잠수함 설계 도면이 대만에 통째로 유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대만 정부의 첫 자체 잠수함인 ‘하이쿤’ 개발에 사용됐을 공산이 크다. 중국 경쟁사에 반도체 핵심 기술을 넘긴 전직 삼성전자 직원과 협력사 관계자가 재판에 넘겨졌다는 보도도 어제 나왔다. 외국이 군침 흘리는 특급 기술이 허다하고 법망과 감시망은 대단히 허술해 대한민국이 범죄의 표적이 된 현실을 새해 벽두부터 절감하게 된다.
특히 잠수함 도면 사건은 예삿일이 아니다. 우리 방위산업 수출은 2020년 30억 달러에서 2021년 72억5000만 달러, 2022년 173억 달러로 급증 추세다. 지난해에는 수출 대상국이 전년 3배인 12개국으로 다변화했고, 캐나다와 3300t급 잠수함 12척 수출 협상을 진행하는 등 질적 측면에서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K방산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옥동자인 것이다. 하필 이 전선에서 큰 허점이 노출됐다.
윤석열 정부는 2027년 세계 4대 방산 수출국 도약, 세계 수출 점유율 5% 돌파를 목표로 내걸고 각종 지원 정책과 제도를 마련 중이다. 4대 수출국이 되면 매출은 30조 원대에 달하고 고용인력은 2배로 증가한다. 먹거리 차원만 챙길 것도 아니다. 국가 안보의 방벽이 자연스럽게 다져지는 부수적 효과는 수지타산을 계산기로 따질 선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K방산 역량을 키우고 지킬 힘이 있는지 엄중히 묻고 있다. 핵심 기술 도둑질을 차단할 법망, 감시망 강화 책무를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어제 경찰에 따르면 조사를 받는 혐의자는 전직 대우조선해양 직원 2명이다. 내부 기술을 유출한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재직 당시 잠수함 설계 도면을 빼돌린 뒤 잠수함 개발 컨설팅 회사인 A사로 이직했다. 설계 도면은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인도네시아로부터 11억 달러(약 1조4393억 원)에 3척을 수주한 ‘DSME1400’ 모델이다. 이 잠수함은 2019년 인도네시아에 인도됐다.
경찰은 A사가 대만국제조선공사(CSBC)와 함께 잠수함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면이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건이 불거진 경위도 경악스럽다. 회사나 유관 당국, 수사기관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대만 내 친중 성향의 국회의원이 한국 대만대표부에 CSBC에서 도면이 돌아다닌다고 제보한 뒤에야 비로소 사건이 인지됐다.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대만과의 갈등 때문에 대만의 잠수함 개발을 견제한다. 그래서 친중 의원이 나섰을 것이다. 만약 중국이 신경을 쓰지 않거나 되레 반기는 분야에서 기술 도난극이 빚어진다면 어찌 챙기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후약방문이라도 내놓을 수 있나. 중국을 비롯한 기술 경쟁국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초격차 기술 입수에 혈안이 돼 있는데도 기술 보호의 현주소가 이렇다. 어찌 4대 방산 수출국을 꿈꾸고 국부 증진을 하겠나. 국가 안보의 방벽이 튼튼한지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