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 드러나도 원인분석은 안해
구조적 문제 개선전망도 제시를
새해에 즈음하여 수많은 국내외 기관이 연례행사처럼 신년의 경제성장 예측을 쏟아놓는다. 올해도 예외없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해 국책 연구기관, 민간연구소, 정책 금융기관, 증권사, 국제기구 등 수십 군데서 2024년의 한국 경제성장 전망을 발표하였다.
국내외 주요 기관이 제시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최고 2.3%에서 최저 1.7%로 분포되며, 평균 2.0%로 집계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국제기구와 국책기관의 전망치는 2.0% 이상으로 높은 반면, 국내 민간연구소와 증권사들의 전망치는 1%대로 낮게 나왔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가장 높은 2.3% 성장을 예상했고, 이어서 한국개발연구원 2.2%, 한국은행 2.1%, 산업연구원 2.0% 등이 2.0%대의 성장률을 전망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LG경영연구원은 1.8%, 신한투자증권은 1.7%의 낮은 성장률을 제시했다. 대체로 국책기관은 희망적 낙관론, 민간기관은 보수적 비관론에 치우친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전망은 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며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권위 있는 기관들이 제시하는 경제성장 전망치가 이 정도로 편차를 보이면 어떤 잣대에 맞춰 정책을 수립하고 투자 계획을 세워야 할지 난감해진다. 큰 차이를 보이는 경제성장 전망치 중에 무엇이 실제로 1년 후 성장률과 정확히 일치하게 나타날 것인지 궁금하다.
2023년에도 연초에 대부분의 기관이 2%대의 성장률을 전망하였지만 실제로는 연말에 1.3~1.4%대의 성장률로 마감하였다. 1년 전에 1% 초반대의 성장을 전망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2023년도 경제전망에서 가장 크게 어긋난 부분은 미국 경제에 대한 예측으로, 우리나라와 반대로 미국 경제는 전망치보다 더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미국의 경제학자 대다수는 2023년 미국 경제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2023년에 실업률이 치솟고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며 증시도 추락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미국의 성장률은 2022년의 1.9%보다 낮은 1% 초반대로 예상되었는데 결과는 오히려 더 높은 2.4~2.5%로 나타났다.
이에 미국 경제학계는 경제전망이 왜 틀렸는가에 관한 반성문을 내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잘못된 경제전망을 내놓은 원인 중 하나로 물가인상을 야기한 공급망 대란이 코로나 감염병의 소멸로 2023년에 해소되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지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성장 전망이 틀린 것에 대한 반성문이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단지 일부 증권사에서 빗나간 증시 전망에 대한 오류를 복기하기 위해 ‘2023년 나의 실수’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는 소식만 있을 뿐이다.
경제전망이 틀린다고 이를 중단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단지 기계적 계량분석에 의해 산출한 전망치만 발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앞으로는 경제전망치의 발표와 더불어 왜 이전의 전망치가 틀렸는가에 대한 반성이 같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요인을 간과하여 전망치가 어긋났고 이를 어떻게 경제성장 예측모형에 반영해 더욱 정확한 전망치를 산출하고자 노력하였는가를 설명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전망치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왜 한국 경제가 전망치보다 실제 성장률이 낮은가에 대한 원인 진단도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심각한 문제는 어떤 비관적 전망보다도 성장률이 낮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저성장 기조가 장기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낮은 성장률을 보이며, 이런 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장 비관적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떨어진 것은 오래 누적되어온 구조적 비효율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감소, 지방소멸, 노동 경직성, 과잉규제 등의 문제는 다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소홀하였고 그 결과 경제는 계속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경제전망을 내놓을 때는 단순히 경제 전반의 성장률 전망치뿐 아니라 이런 구조적 문제가 앞으로 얼마나 개선될 것인지에 관한 전망도 같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우리 경제의 고질적 문제를 해소하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