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한마디

입력 2023-1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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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주 사회경제부 기자
▲송석주 사회경제부 기자
우연히 가수 하림 씨의 노래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이하 우사일)'를 들었다. 최근 하림 씨는 전국을 돌면서 '우사일' 프로젝트를 통해 일터의 안전과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행보는 새로운 게 아니다. 하림 씨는 2010년 발생한 '당진 용광로 사고'를 소재로 쓴 제페토의 시에 멜로디를 붙여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다. 모 철강업체에서 일하다가 용광로에 빠져 사망한 청년노동자의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또 그는 '국경 없는 음악회'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공연도 3년 넘게 진행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타국에서 땀 흘리는 그들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게 하림 씨의 설명이다. 이처럼 그는 이른바 '음악 사회활동'을 전개하면서 노동자들의 고단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하림 씨의 노래를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국어사전에 '일'을 검색했다.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일의 사전적 정의다.

일의 정의를 보고 생각이 더 깊어졌다. 우리는 일을 통해 '적절한 대가'를 받고 있나. 우리는 '일정한 시간'만 일에 투여하고 있나. 차별적이고 미진한 대가를 받으며,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일에 쏟아붓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사전적 정의 밑에 제시된 첫 번째 예문은 '일을 마치다'였다.

대학원 시절,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면서 일의 의미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리키는 안락한 생활을 위해 택배 회사에 취직하지만, 그 일이 오히려 자신과 가족의 평화를 깨뜨리는 참극으로 귀결되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대학 졸업 후 이제 막 인턴을 시작한 후배, 일찍 취직해 곧 직장인 10년 차가 되는 친구,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한숨 쉬는 50대 선배 등 공교롭게도 최근 일이 힘들다고 하는 지인들이 많다. 새삼스러운 지인들의 말에 이토록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 다 같은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권을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는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이다. 나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의 환경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같은 인간이며,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위로와 연대의 발걸음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가 당신에게 일이 힘들다고 말한다면, "그래도 버텨야 하지 않겠니?"라는 반문 대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위로하면 어떨까. "너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이 다 힘들어"라는 면박 대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고 말해주면 어떨까.

일은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야 일이 지속하며 순환한다. 모두가 물리적 상처, 마음의 상처도 받지 않고 일을 잘 마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림 씨의 노랫말처럼, 내가 일하다 다치면 엄마의 가슴이 무너지니까. 우리 모두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니까.

송석주 기자 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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