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싸워서라도 디젤 몰아낼 것"…경유차 퇴출·건물 규제
정부·車업계 압박, 여론 업고 성과…온실가스 배출 33% 감축
“국가가 안 하면 도시가 한다.”
일본 도쿄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대장정은 2006년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지사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지구 온난화에 경고등이 켜지면서 1997년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한 첫 국제협약, ‘교토의정서’가 채택되고 2005년 발효된 후에도 정부의 대응이 미온적이자 총대를 메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그해 시정연설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도시가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며 “필요한 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선언했다. 목표도 과감했다. 2020년까지 2000년 대비 25% 삭감을 내걸었다. 당시 정부 목표치(2012년까지 1990년 대비 6% 삭감)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도쿄는 지금, 이시하라 도지사의 강한 리더십이 이끈 기후변화 대책에 힘입어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이시하라가 정부를 상대로 처음 ‘반기’를 든 건, 그보다 몇 년 거슬러 올라간다. 대기질 악화에도 정부가 소극적으로 나오자 그는 “국가와 싸워서라도 디젤을 몰아내겠다. 우리가 지더라도 부끄러운 것은 중앙정부일 것”이라고 선포했다. 경유차와의 전쟁 서막이 오른 것이다. ‘경유차 NO 캠페인’을 진두지휘한 이시하라는 주도면밀했다. 먼저 여론을 움직였다. 새까만 그을음이 가득 담긴 페트병을 들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이게 경유차가 1km 달리는 동안 나오는 미세먼지다. 도쿄에서만 하루 12만 병이 나온다. 이를 방치하는 건 살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각인시킨 그는 여론을 등에 업고 이해관계자를 설득, 또 압박에 나섰다.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자동차업계 대표를 향해 “노력한다는 건 이제 질렸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저공해 차량에 보조금을 주는 지원책과 함께, 배출 기준을 초과한 경유차의 도내 통행을 금지하는 규제책을 과감히 적용했다. 그 결과, 2005년 도쿄 전역이 미세먼지 측정 이래 최초로 환경기준을 달성하는 성과를 이뤘다.
리더십과 여론의 ‘합작’은 온실가스 감축에서도 저력을 발휘했다. 이시하라는 ‘카본 마이너스 도쿄 10년 프로젝트’에 착수하면서 특히 건물에 주목했다. 도쿄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건물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었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대규모 건물을 대상으로 탄소배출 총량 의무 삭감과 배출권거래제를 적용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경제계의 반발이 심해 정부가 배출권거래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도쿄는 2010년부터 도입하겠다.” 업계 자율에 맡기는 대신 규제의 칼을 빼든 것이다.
정부보다 앞서 도시 차원에서 건물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건, 도쿄가 세계 최초였다. 연간 에너지 사용량 1500kL 이상인 건물 약 1200개에 제도 시행 전 3개년 평균 배출량을 기준으로 감축률을 부여했다. 그랜더파더링 방식이다. 기간 내 감축 의무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 감축량은 부족분의 1.3배로 늘어나고 위반 시 벌금(최고 50만 엔)이 부과된다. 다만, 총량 감축 의무 이행 수단의 하나로 마련된 배출량거래제를 통해 크레딧(다른 건물의 초과 감축분)으로 충당할 수 있다.
당근과 채찍의 병행 효과는 컸다. 도쿄는 온실가스 배출 삭감 목표치를 일찌감치 달성한 채 순항 중이다. 도쿄도청에 따르면 제2계획기간(2015~2019년 평균) 배출량은 기준년도(2002~2007년) 대비 27% 삭감을 기록, 목표치(17%)를 훌쩍 넘어섰다. 제3계획기간(2020~2024년 평균)의 27% 삭감 목표도 2021년(33%) 이미 초과 달성했다. 다음 목표는 제4계획기간(2024~2029년) 50% 삭감이다.
이해관계자들은 도쿄가 온실가스와의 전쟁에서 세계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의 배경엔 이시하라 전 도지사의 리더십이 있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건물 온실가스 배출량 검증 기관인 E&E플래닝센터의 다나카 스즈키 위원은 “도쿄가 세계 최초로 건물 배출권거래제를 도입, 반발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조정하면서 결국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동력으로 이시하라 도시자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온실가스 감축 레이스에서 뒤처진 서울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다. 도지사의 권한이 강해 제도 도입과 운영에 ‘자율성’이 있는 일본과 달리, 서울은 권한을 움켜쥐고 있는 중앙정부와 시작도 전부터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일본은 2000년 지방분권일괄법 시행으로 지자체가 국가의 승인 없이 조례를 제정해 자율적으로 환경정책을 실시할 수 있다.
이주영 서울시 친환경건물과 과장은 “도쿄나 뉴욕 등 해외 대도시들은 이미 건물 에너지사용량을 평가, 관리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서울도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건물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하는 등급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