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대·연립시장 ‘소멸’ 위기 처해
공급촉진 강화해 연착륙 유도해야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이른바 ‘빌라왕’ 사태는 전세사기라는 해묵은 사안을 전 국민적 관심거리로 만들었다. 며칠 시끄럽다 마는 단순 사기사건과 달리 전세사기 사건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가장 뼈아픈 것은 우리 사회 서민들의 주거사다리가 급격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서민들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하던 전세제도와 빌라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며 기피대상으로 떠올랐다. 때문에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월세 계약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고 빌라보다는 아파트를 찾으면서 소형 아파트들은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주거사다리 개념에서 본다면 전세제도와 빌라는 필수적이다. 매월 주거비용이 들어가는 월세보단 부담이 덜한 전세로 거주하는 게 자가마련을 위한 목돈을 모으기 쉽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빌라의 경우도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를 매입하기 전 거주하는 용도로 밑거름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하지만 전세사기 여파로 연립주택·다세대 등 빌라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기피현상이 극심해 지고 있다. 그나마 보증금 떼일 걱정이 적은 월세 수요만 빌라로 향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0월 서울 빌라(다세대·연립주택) 전월세 거래량은 11만1440건 중 월세 거래량은 5만198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년(1~10월 기준) 이후 최대치다. 더 큰 문제는 공급마저 끊길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내년 1분기 서울의 빌라 입주 물량이 약 400채 규모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1년 이후 역대 최소치다. 최근 3년간 분기별 서울 빌라 준공 물량이 평균 4936채였음을 고려하면 내년 1분기 준공 예정 물량은 거의 소멸 수준이다.
장기적 공급 전망 역시 비관적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전국 빌라(다세대·연립) 인허가 물량은 1만1726가구에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3만2609가구)의 3분의 1수준이다. 서울은 작년 1만1620가구에서 올해 2948가구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든든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던 빌라 시장이 왜 소멸론까지 불거질 정도로 망가지게 됐을까? 정부는 9·26 공급대책을 내놓으면서 “주택공급 사인을 계속 주겠다.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판단을 미리 차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내놓아도 실제 공급 주체인 민간 주택건설사 및 시행사(디벨로퍼)가 움직이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어놔도 안 팔릴 게 뻔한 상품을 계속 지을 리 만무하다. 시공에서 입주까지 최소 1~2년이 걸리는 빌라 특성상 지금이라도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현 정부 임기 말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불거질 공급대란과 가격 불안은 피하기 어렵다. 물론 민간 영역에서 벌어진 문제를 정부가 온전히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서민의 주거사다리였던 빌라와 다가구 등의 생태계가 붕괴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월세로 임대차 시장이 변화한다면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주거사다리 복원은 시급을 다투는 중대사안으로 분류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지명된 박상우 후보자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아파트에 집중된 공급 형태를 다양화하겠다”고 공언했다는 점이다. 전용면적 60㎡ 미만의 빌라와 오피스텔을 주택 수 산정에서 빼거나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등 구체적인 연착륙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당장의 부동산 시장에 함몰되지 말고 서민 주거사다리 복원이라는 큰 그림이 빨리 그려지길 바라본다. car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