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거친 음식’ 예찬론

입력 2023-11-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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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장 길이는 자기 키의 4배 정도다. 장의 길이가 이렇게 긴 이유는 거친 음식을 먹으면 소화흡수에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기에 장의 길이도 거기에 맞춰 길어졌기 때문이다.

신생인류는 대략 30만 년 전에 태어나 그로부터 29만 2000년까지 먹고 자고 살아가는 데 동물과 별 차이가 없었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거의 날 것 그대로의 거친 음식을 먹었고, 우리 몸은 거기에 맞게 진화돼 왔다. 신석기 시대 그러니까 지금부터 대략 8000년 전부터 인간은 동물 수준에서 벗어나 정착생활을 하고, 도구를 만들고, 농사를 짓고, 요리를 했다. 요리를 하면서 차츰 부드러운 음식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처럼 요리법이 발달해 생크림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은 기간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200년 동안 우리의 생활 방식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 변했지만 진화란 그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의 몸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대사 작용은 오랜 과거, 다시 말해 거친 음식을 먹던 시기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과학이 발달해 캡슐이나 파우치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죄다 담을 수 있다 해도 이것만 먹으며 살 수 없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유병률이 계속 늘고 있는 고혈압, 당뇨, 심장병, 동맥경화, 고지혈증, 비만 등 성인병이라 불리는 대사질환은 거친 음식에 맞게 세팅된 우리 몸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 부드러운 음식을 잘 처리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동창생들을 만났는데 누군가 복부비만을 아직도 인격이라 하고, 이 나이에 건강문제를 왜 모르겠냐며 다만 실천을 못 할 따름이라 했다. 나는 매일 아침 생야채를 송송 썰어 비빔그릇 바닥에 깔고, 잡곡밥과 각종 야채반찬을 넣고, 된장, 고추장, 참기름, 깨소금으로 간을 한 다음 비벼 먹는다. 거칠다. 맛도 별로다. 하지만 속은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출퇴근은 승용차 대신 걷고 전철을 이용한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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