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왜 인도인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는지 아시나요?”
30대 초반 젊은 교수가 최근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 때문에 아무리 성공한들 신분 차별이 있어 미국을 택하는 연구자들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지원과 선진 인프라도 선택의 이유기도 하다.
반면 한국의 경우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거나 포스트닥터(박사후과정)를 마치고 본국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인프라를 갖춘 연구기관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과거에 비해 늘어나면서 청년 연구자들이 설 자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내년도 R&D 예산 삭감 발표 이후 과학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4대 과학기술원 등 11개 대학 학부 총학생회는 지난달 30일 ‘연구개발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R&D 예산 삭감 백지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청년 연구자들의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청년 연구자들의 여론이 악화하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계와 릴레이 간담회를 한 데 이어 지난 22일에는 4대 과기원 총학생회 대표단을 만나 달래기에 나섰다.
‘나눠먹기식 R&D 예산 혁파’를 지시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미 한인 미래세대와의 대화’에 참석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인 미래세대 연구자들이 세계적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적에 관계없이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정부 지원으로 해외에서 박사후과정을 밟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자칫 정부 지원이 끊기거나 한국으로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이어지고 있다. 일선 교수들은 예산 삭감 소식에 벌써 정부 연구과제 감소로 교수 간 경쟁이 과열되고 있고, 내년·후년 연구실 운영이 막막하다고 토로한다.
과기정통부는 28일 정부의 R&D 혁신방안과 ‘글로벌R&D 추진전략’을 발표한다. R&D를 혁신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기 전에 어떠한 정책적 판단의 근거로 R&D 예산을 조정한 것인지, 예산을 줄이면서도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모순된 메시지를 정리하고 현장과 소통하는 것이 먼저다.
19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화학자이자 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과학기술 발전은 과학자들의 몫이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예산이다. 과학자에게 조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더욱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better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