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9·19 남북 군사합의’에서 대북 정찰 능력을 제한하는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전날 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따른 긴급 대응 조치다. 영국을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임시 국무회의의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 안건을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앞서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 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으며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켰다”고 주장했다. 장거리 로켓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기술적 구분이 불가능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어떠한 발사도 금지하고 있다. 북한이 어떤 설명을 늘어놓든, 이번 도발은 유엔과 국제사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우리 당국은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시킬 것이란 최후통첩을 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5월, 8월 실패에 이어 3번째 발사를 감행했다. 정부가 통첩 실행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최우선으로 공중 감시·정찰 활동을 정상화해 안보 제1선을 튼튼히 지켜야 한다.
신뢰 기반이 무너진 남북 정세는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다. 통일부에 따르면 1971년 남북 간 최초로 적십자 예비회담 진행 절차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된 이후 현재까지 문서로 채택된 남북 합의는 총 258건이다. 상당수가 사문화됐으나 우리 측만 계속 이행하고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에 나온 9·19 합의도 마찬가지다.
9·19 합의의 본질적인 결함은 한반도 안보의 아킬레스건인 북핵 문제를 담지 못한 채로 우리 측의 감시정찰 능력에만 족쇄를 채웠다는 점이다. 불균형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 북한은 그나마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합의서에 서명하고도 번번이 도발했다.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9월 19일 이후 지난해 말까지 북한이 명백히 합의를 위반한 사례는 17건이다. 무인기 도발도 자행했다.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군사분계선 일대의 해상 포사격과 군사 훈련 중지 등을 규정한 제1조 2항 효력부터 무효화해야 마땅하다.
조선중앙통신의 주장은 ICBM 기술 축적을 시사한다. 핵무기를 확보한 것으로 관측되는 북한이 ICBM까지 손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미국의 핵우산에 위협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내 친북·종북 세력은 남북 갈등이 불거지면 우리 정부 탓을 하기 일쑤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작태다. 친북 세력은 차라리 북한이 왜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정면으로 반하는 역주행을 계속하다 ICBM에까지 접근했는지 국민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군·정보 당국은 이번 도발에 러시아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군사 강국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정학 격변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한다. 안보 없이는 경제도, 복지도, 미래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부터 거듭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