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이은해(32)‧조현수(31)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도피한 행위를 범인도피 교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이 씨와 조 씨에게 범인도피 교사죄를 인정해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이 씨와 조 씨는 2021년 12월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자 지인 2명에게 은닉처와 은닉 자금 등을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검찰은 본인들의 도피를 교사한 혐의로 기소했다. 잠적한 두 사람은 약 4개월간 도망 다니다 지난해 4월 16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오피스텔에서 검거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 자신의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 도피도 일종의 방어권 행사로 보기 때문이다.
1심과 2심 법원은 “120일 넘는 도피 생활은 통상적인 도피 행위와는 다르다”며 두 사람이 피의자로서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방어권을 남용했다고 봐 징역 1년씩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통상적인 도피의 범주로 볼 여지가 충분해 방어권을 남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증거가 발견된 시기에 도피했다거나 도피 생활이 120일간 지속됐다는 것 △수사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던 것 △변호인을 선임하려고 했다는 것 △일부 물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 등은 통상적인 도피행위 범주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심 판결에 범인도피 교사죄의 성립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 씨와 조 씨는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24분께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남편 윤모(사망 당시 39세) 씨를 물에 빠지도록 해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올해 9월 이 씨에게 무기징역, 조 씨에게 징역 30년을 각각 확정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