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에너지 빈곤국’ 숙명 일깨우는 WB의 경고

입력 2023-1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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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세계은행(WB)은 어제 ‘원자재 시장 전망’을 통해 중동 충돌이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당장은 제한적이지만 분쟁이 확산할 경우 석유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원자재 전반에 적신호가 켜질 것이란 전망도 더해졌다. 에너지 빈곤국인 우리나라로선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냉엄한 경고다.

WB는 가변적인 전망을 2011년 리비아 내전, 2003년 이라크 전쟁, 1973년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등 세 유형의 시나리오로 정리했다. 최악은 1973년 중동전쟁 유형이다. 중동 산유국들이 50년 전처럼 석유 무기화에 나서면서 유가가 배럴당 140∼157달러에 이르는 등 경제 안팎의 충격파가 눈덩이처럼 증폭되는 시나리오다. 나머지 둘도 유가가 배럴당 93~102달러, 109~121달러로 치솟는 시나리오이니 근심을 크게 덜기는 어렵다.

1970년대 석유 파동은 지구촌 전반에 엄청난 고통을 초래했다. 에너지 대외의존도 90% 이상인 우리나라는 빠져나갈 길조차 없었다. 1973년 1차 오일 쇼크 때는 물가가 단번에 30% 가까이 올랐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1979년 2차 오일 쇼크도 대단했다. 1980년 우리 경제성장률은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WB는 “분쟁이 격화하면 세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쟁이란 이중의 에너지 충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강국이자 에너지 과소비 국가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민 1인당 전력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미국 등에 이어 7번째로 많다. 총전력 소비량 기준으론 미국, 일본, 캐나다에 이어 OECD 4위다.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직격탄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한국은 원자력을 비롯한 독자 에너지원 개발에 주력하는 등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다각도로 힘써왔다. 그러나 에너지 구조는 취약하다. 에너지 자원은 절대 부족이고, 과소비 성향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원자력발전 덕분에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낮아졌다지만 여전히 외생변수에 크게 좌우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소규모 개방경제에 재앙이 되게 마련이다. 수입 원자재·부품 가격은 급상승하고 일반 물가도 고공행진을 한다. 고물가, 고환율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엔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기 십상이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율과 초고령화 이행 속도 등 인구학적 딜레마와 잠재성장률 저하와 같은 구조적 문제는 더더욱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는 한편으론 민생을 돌보면서 다른 한편으론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기업, 가계는 부채 감량을 서둘러야 한다. 빚더미만 미리 덜어내도 국가 대응력은 한결 강화된다. 안전띠를 단단히 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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