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서울 여의도 지검’의 탄생

입력 2023-10-30 06:00 수정 2023-10-3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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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을 흔히 ‘금융검찰’이라고 부른다. 금융사들 한테는 진짜 검찰보다 더 가까이 있고 더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검찰이 금감원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벌인 일이 있다. 그 무렵 쯤에는 권력 기관들끼리 적당한 선에서 서로 안 건드리고 일을 처리하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에 꽤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금융검찰이라더니 진짜 검찰이 뜨니 맥을 못추더라는 얘기가 제법 재미있는 화젯거리였다.

그때 일을 떠올리다 보면 최근 격세지감을 느낀다. 얼마 전 금감원 앞에서는 몹시 생경한 광경이 펼쳐졌다. 김범수 카카오 전 의장(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 길게 늘어선 포토라인에서 터지는 플래시며 취재진의 마이크 세례 등이 전형적인 검찰 출두 장면을 연상케 해서다.

필자도 오랫동안 출입기자로 금감원을 드나들었지만 그런 광경은 처음 봤다. 십수년전 진짜 검찰한테 털리면서 스타일 구겼던 금융검찰이, 이제 진짜 검찰이 됐구나 싶었다. 그제야 이복현 금감원장이 검사 출신이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대검찰청 아래에 서울고등검찰청이 있는데, 그 아래에는 서울지역을 나눠서 관할하는 중앙, 동부, 남부, 북부, 서부검찰청이 있다. 보통 ‘OO 지검’이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 조직이다. 그런데 이제 금감원도 여기에 추가해 ‘여의도 지검’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김 의장이 불려온 것은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 때문이다. 금감원에는 본시장의 불공정거래나 미공개정보 이용 범죄를 수사하는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라는 조직이 있는데, 여기서 김 의장을 조사하기 위해 부른 것이다.

사건의 진위와 김 의장의 책임 여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왜 금감원이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는지가 궁금하다. 특사경은 2019년에 출범했지만 한 번도 사람을 출석시키면서 이렇게 법석을 부린 적이 없다.이건 사건을 터뜨려 일을 키우고, 여론전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검찰의 방식이다.

검사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한 이후 이 나라가 검찰 공화국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온게 한참 전이다. 검사 출신 이복현 원장이 취임한 이후 특사경의 활용이 높아질 것이라는건 예상됐지만, 아예 대놓고 검찰청 흉내를 내는 것은 너무 노골적이다.

이 원장은 사실 취임 이후부터 남달랐다. 현역 검사시절 대형 금융사건을 다룬 경제·특수통답게 각종 현안에 대해 강도 높은 발언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사경을 내세워 거대 기업 카카오를 잡는 것도 검사시절 대기업 사건을 주무르던 이 원장에게는 크게 어렵지 않을 일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보더라도 금감원은 수사 조직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금융질서를 바로 잡고, 시장에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감독 기관이다. 조직의 위상이나 원장 개인의 브랜드를 키우기보다는 조용하더라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검찰의 소위 ‘특수통’ 검사들이 굵직한 사건을 해결해 체급을 키운 뒤, 정치권으로 나가는 것은 익히 봐온 일이다. 검사들이 그토록 화제성에 집착하는 것은 이렇게 ‘큰 꿈’을 꾸기 위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카카오에 대한 조사는 엄중히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행여 이참에 위명을 떨쳐 다음 스텝을 준비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생각을 고치라고 말하고 싶다. 시세조종 사건에는 항상 그 아래에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의 억울함이 서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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