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놨지만, 그 내용은 ‘맹탕’이었다. 그나마 5년 전엔 복수 개혁안을 사지선다형으로 내놨지만, 이번엔 주요 쟁점을 ‘빈칸’으로 남겨뒀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27일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종합운영계획안을 확정한 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계획을 작성한 복지부는 연금 개혁의 ‘방향성’을 잡는 데 집중했다. 보험료율 인상을 전제로 연령계층별 인상 속도 차등과 확정기여방식(DC)으로 전환, 고령자 계속고용 여건(정년 연장) 성숙을 전제로 한 수급 개시연령 및 의무가입 상한연령 상향 등을 화두로 던졌다.
다만, 보험료율 인상 수준 등 주요 쟁점에 대해선 ‘의견이 다양한 만큼, 공론화를 통해 구체화하겠다’고만 밝혔다. 이는 복수 선택지를 제시해 국회에 결정을 떠넘겼던 2018년 개혁안보다 소극적인 안이다. 복지부는 2018년 12월 발표한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 보험료율 인상안을 ‘현행 유지안’, ‘기초연금 강화안(국민연금 유지, 기초연금 40만 원)’, ‘노후소득 강화안Ⅰ(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2%)’, ‘노후소득 강화안Ⅱ(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3%)’ 등 4개로 나눠 제시했다. 이후 국회는 논의를 미루다 끝내 국민연금 개혁을 포기했다.
이번엔 보험료율 등 쟁점을 국회가 직접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보험료율 인상의 총대를 멜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민단체에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기금고갈론 중심으로 논의를 끌어가며 공포를 조장해놓고도 최소한 이를 해소할만한 어떠한 방안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등 핵심적인 숫자는 아무것도 없고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되는 맹탕 연금개혁안”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연금개혁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누가 어떤 책임을 가지고 선택하라는 것인가”라며 조규홍 복지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조 장관은 이번 종합운영계획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데 대해 “그동안 개혁 과정을 보면 정부가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수준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해왔는데, 제대로 된 성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그래서 이번에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것보다는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