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메뉴가 달라진다?”…전쟁이 가져온 뜻밖의 변화 [이슈크래커]

입력 2023-10-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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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5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수신코너에서 직원이 킹크랩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2020년 2월 5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수신코너에서 직원이 킹크랩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한국이 때아닌 ‘킹크랩 특수’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마트는 20∼21일 이틀간 러시아산 레드 킹크랩을 100g당 5000원대에 판매한다고 19일 밝혔는데요. 지난달 이마트 킹크랩 평균 판매가는 100g당 1만980원이었습니다. 반값 정도 가격으로 내린 겁니다.

고급 식자재로 꼽히는 킹크랩은 ㎏당 12만 원대의 높은 가격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부터 가격이 급락했는데요.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산 해산물 수입을 금지한 영향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산 킹크랩의 주요 소비국입니다.

통상 킹크랩은 아시아권에선 살아 있는 상태로, 미국·유럽에선 냉동 상태로 유통됩니다. 그런데 전쟁 이후 러시아의 수출길이 제한되면서 냉동창고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이에 올해 잡은 킹크랩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로 더 많이 수출한 것이죠.

또 중국의 경기 침체 여파로 최대 명절인 ‘중추절’에 킹크랩 수요가 급감한 것도 킹크랩이 저렴해진 원인으로 꼽히는데요. 올해 러시아산 킹크랩 생산량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최소한 연말까지는 이런 저가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전쟁으로 인해 먹거리 물가가 안정됐다고 봐도 되는 걸까요? 결코 그렇진 않습니다. 특수 품목을 제외하고는 서민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입니다. 불확실성이 커 향후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쉽사리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죠.

▲2022년 8월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즈후리브카 마을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 (AP/뉴시스)
▲2022년 8월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즈후리브카 마을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 (AP/뉴시스)

곡물 수급 여전히 ‘불안’…짜장면, 더 이상 서민 음식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립니다. 그만큼 농산물을 많이 생산하고 수출한다는 건데요. 두 나라는 세계 밀과 보리 수출량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곡물 수출 대국입니다.

이에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수급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곡물 가격도 급등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밀 등 주요 곡물의 수출을 아예 일시 중단해버리기로 했는데요. 자국 내 공급을 우선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꺼내든 ‘수출 중단’ 카드로, 전 세계 곡물 시장엔 충격이 불가피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 달 만에 전 세계 밀값은 21%, 보리는 33% 상승한 바 있죠.

전 세계 식량 위기가 심화하자,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지나는 곡물 수출 선박의 안전을 120일간 보장한다는 내용의 ‘흑해 곡물 수출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우크라이나가 900만 톤 이상의 농작물을 수출하면서 밀 가격도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었죠. 그런데 돌연 악재가 찾아왔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함대 공격을 문제 삼으면서 지난해 10월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빠지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유엔과 튀르키예가 황급히 중재에 나서면서 러시아는 중단 선언 나흘 만에 다시 협정에 복귀했지만, 언제든지 협정 참여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연장 협상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하면서 식량 안보에 대한 긴장감은 여전했죠.

최근 국제곡물 가격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여파가 지속되고 인도의 쌀 수출제한조치 등에 따라 국제곡물 위기단계는 여전히 ‘주의’ 상황입니다. 세계 2위 쌀 생산국인 인도는 올해 7월부터 백미의 수출을 금지하는 한편 반숙미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죠. 인도산 쌀을 수입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인도의 수출 통제가 장기화하면 수입 의존도가 높은 다른 곡물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곡물 가격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지난달에는 짜장면 한 그릇 평균 가격이 처음으로 7000원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지역의 짜장면 1인분 평균 가격은 7069원으로 전달(6992원)보다 1.1% 올랐는데요. 1년 전(6300원)과 비교하면 12.2% 상승한 겁니다. 전쟁으로 국제곡물 가격이 치솟은 여파가 이어지는 데다가 전기요금, 인건비까지 오르면서 짜장면을 포함한 외식 물가가 뛰고 있는 거죠. 지난달 기준 외식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9% 뛰면서, 전체 물가상승률(3.7%)을 상회했습니다.

▲15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나와 있다. (뉴시스)
▲15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나와 있다. (뉴시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물가 불확실성 키운다…“자몽만 문제?”

설상가상 또 다른 전쟁이 국제사회를 강타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교전이 격화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요. 이 전쟁 역시 식탁 물가에 대한 변동성을 가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농업 선진국입니다. 대표 작물은 자몽, 오렌지, 레몬 등 감귤류인데요.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에 따르면 국내 대형마트가 11월부터 3월까지 판매하는 자몽 중 8할이 이스라엘산 자몽입니다. 다수의 카페에서는 자몽에이드 등 음료를 제조할 때 이스라엘산 자몽을 사용하죠.

이에 전쟁이 길어지면서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 업계도 대체 수입 지역을 물색해야 합니다. 다만 업계는 자몽은 다른 수입 식품에 비해 물량이 많지 않고 대체 산지 발굴도 어렵지 않아 당장 전쟁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죠.

그러나 문제는 자몽만이 아닙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국제 정세 불안으로 유가와 환율이 동반 상승할 수 있다는 점에 가장 큰 우려가 나오는데요. 중동 지역은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 등이 상승해 수입 물가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올 하반기 가파르게 오르다가 이달 들어 다소 진정되는 듯한 국제유가가 다시 불안정성이 커진 거죠.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주변국까지 뛰어들면서 신 중동전쟁으로 확대될 경우입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이란이 참전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 ‘오일 쇼크’가 올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이란은 주요 산유국인 데다가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를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란이 이 해협을 봉쇄하면, 전 세계 원유 수송에도 차질이 생깁니다. 바닷길이 막히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가 보유한 예비 산유 능력만으로는 유가 급등을 막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크죠.

확전 공포가 커지면서 국제유가는 2주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습니다. 1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1.92% 오른 배럴당 88.32달러에 거래를 마쳤는데요. 이달 3일 이후 2주 만의 최고치입니다.

동시에 달러화 흐름도 심상찮습니다. 국제유가와 달러가 동시에 뛰는 현상은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때부터 달러화 지수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유가가 더 뛰면 강달러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죠. 이스라엘-하마스 사태의 국제금융시장 영향은 아직 제한적인 모습이지만, 향후 전개 양상에 따라서 시장 변동성을 크게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17일(현지시간) 가자 지구 남부 도시 칸 유니스에서 사람들이 파괴된 건물 잔해에 모여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신화/뉴시스)
▲17일(현지시간) 가자 지구 남부 도시 칸 유니스에서 사람들이 파괴된 건물 잔해에 모여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신화/뉴시스)

변수는 이란 개입 여부…유가 불안정 이어질 듯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이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양측에선 모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민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까지 또다시 발목을 잡힌 상황, 전 세계의 고심은 깊어져만 가고 있죠.

이번 전쟁의 중요한 변수는 이란입니다.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이란이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단체에 연간 약 1억 달러(한화 약 1354억 원) 규모의 후원을 하고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고 전했는데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레바논), 카타입헤즈볼라(이라크), 후티 반군(예멘) 등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서 종파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종파가 다른 하마스에도 자금·무기 지원을 이어왔죠. 다만 포린폴리시는 “이란이 하마스의 직접적인 대리인으로 나서기엔 무리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외신을 종합해 보면 세계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에 이란의 참전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긴 하지만, 완전히 배제하진 않고 있습니다. CNN은 16일 “주말 이후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심각한 무력 충돌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이란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를 전쟁에 끌어들일 수 있다”고 전망했는데요.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도 “이란에는 ‘레드라인’(한계선)이 있다”며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실행하면 이란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미국 행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둔 만큼, 적극적인 외교전에 나서면서 유가 오름세를 조절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중동 지역 불안으로 인해 유가는 한동안 평소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할 거라는 의견이 다수인데요. 포린폴리시는 결국 세계 경제가 지속적인 압박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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