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생외면’ 닮은꼴 한·미 정치

입력 2023-10-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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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가장 큰 적은 불확실성이다. 인플레이션이나 성장, 실업, 무역적자 따위의 경제 변수들은 나름 대응책이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은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그 위험이 얼마나 클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 19를 통해 그런 불확실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달 초 미 정가를 뒤흔들어 놓은 케빈 매카시 연방 하원의장의 전격 해임은 미국을 예측 불허의 수렁으로 몰아 넣은 메가톤급 사건이었다. 극우 공화당 의원들의 주도로 이뤄진 워싱턴발 반란은 순식간에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쳤고, 안전하기로 이름난 30년 만기 재무부 채권이 16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투자자들, 정부 폐쇄 현실화 우려

민주당과 공화당이 가까스로 합의해 연방 정부 폐쇄라는 파국은 면했다. 그러나 그 불똥이 매카시 의장에게 튀었고,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투자자들은 다음달 정부가 폐쇄되고, 선거를 앞두고 연착륙을 기대하던 투자자들은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

리더십 공백으로 공화당은 내달 합의를 연장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연방 정부 폐쇄가 현실화될 경우 경기가 어디까지 후퇴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장은 둘째 치고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그 파장이 채권과 주택시장, 금융권까지 일파만파로 커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공화당의 내홍으로 인한 입법활동 지연은 경제 주름살을 더 깊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당내 강경파는 물론이고, 온건파 의원들조차 앞으로는 민주당과의 협상 여지가 줄어 들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백지수표를 쥐어주려는 민주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을 견제하기 어렵게 됐다고 한탄하고 있다.

하원의장 축출이라는 사상 초유의 의회 쿠데타는 단순히 경제적 혼란만을 초래한 게 아니라 의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기회복 기조를 확립해야 하는 민생 문제 외에도 기후변화, 이민, 총기규제, 우크라이나 전쟁, 최근 촉발된 이스라엘과 중동 간의 분쟁 등 산적한 국내외 현안들을 제쳐 두고 당내 강경, 보수파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몰입하는 상황에 국민들은 큰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들은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양분돼 혼란과 불화를 거듭하는 미의회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존중받지 못하며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 이상 미국식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의 모델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트럼프가 다시 집권하면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해온 NBC 뉴스를 반역죄로 조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좀도둑을 보는 즉시 총살하라고 요구하는 등 막말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초가삼간을 태우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자들도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국회 의사당 점거 사건 같은 정치적 폭력을 용인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기초가 직접적으로 공격당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증폭

그런 점에서 “주요 정치 주체 중 어느 한 당사자가 게임의 기본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통제를 잃는다”는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국가 조직과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다. 예컨대 대통령과 사법부, 경찰, 언론, 의료시스템, 대기업, 노조 등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는 미국인은 절반이 채 안 된다.

지난 6월에 실시된 AP통신 조사에서도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자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숫자는 반반이었다.

거대 양당 주도의 의회와 소수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의회 반란, 민생을 외면한 정파 싸움…. 한국과 미국은 의회도 닮은꼴인가 보다.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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