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죄 성립 요건이 기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에서 ‘신체에 대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14년 8월 15세였던 사촌 여동생의 왼손을 잡아 자신의 성기 쪽으로 끌어 당기고, 피해자를 침대로 넘어뜨려 가슴을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폭행 또는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판단해 A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A 씨의 물리적 힘이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강제추행 혐의는 무죄로 보고,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40여년 만에 강제추행 성립 요건을 완화했다. 강제추행에서 이뤄지는 ‘폭행 또는 협박’이 항거가 곤란할 정도가 아니고 단순히 유형력 행사 정도면 충분하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현행법의 해석으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 요건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며 “강제추행죄 구성요건에서 항거가 곤란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는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