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삼성전자에 불리한 조건으로 스마트기기 부품을 장기간 공급 받도록 계약 체결을 강제한 글로벌 반도체 부품 업체인 브로드컴이 190억 원이 넘는 과징금을 물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브로드컴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191억 원을 부과한다고 21일 밝혔다.
앞서 브로드컴은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해 자신이 마련한 자진시정안(상생기금 200억 원 지원 등)으로 해당 사건을 끝내려 했지만 피해자인 삼성전자가 자진시정안을 거부하면서 동의의결 절차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최근 전원회의를 열어 과징금 191억 원 부과라는 브로드컴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에 사용되는 최첨단, 고성능 무선통신 부품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반도체 사업자다. 삼성전자는 고가 스마트기기에 탑재되는 최첨단, 고성능 부품의 대부분을 브로드컴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부터 브로드컴이 사실상 독점하던 시장에서 일부 경쟁이 도입되기 시작하자 삼성전자에 독점적 부품 공급상황을 이용한 스마트기기 부품 장기계약(LTA) 체결 전략을 수립했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업자로 이탈하지 못하게 하고, 삼성전자로부터 장기간 매출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당시 삼성전자는 관련 시장의 일부 경쟁 도입에 따른 부품 공급선 다원화 추진과 기회비용 및 심각한 재정손실 등을 고려해 LTA 체결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에 대한 부품 구매주문승인 중단, 선적 중단, 기술지원 중단 등의 불공정한 수단을 동원해 LTA 체결을 압박했고, 삼성전자는 심각한 공급차질을 우려해 결국 브로드컴과 2021년 1월 1일~2023년 12월 31일 LTA를 체결했다.
LTA에는 삼성전자가 3년간 브로드컴의 스마트기기 부품을 매년 7억6000만 달러 이상 구매하고, 실제 구매 금액이 7억6000만 달러에 미달하는 경우 그 차액만큼을 브로드컴에 배상해야 하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엔 불리한 조건인 것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해 추진됐다"며 "삼성전자는 당시 브로드컴의 선적 중단 등의 조치로 인해 협상에서 매우 불리했고, 브로드컴의 일방적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 이는 ‘생산라인에 차질이 우려된다’, ‘가진 카드가 없다’, ‘브로드컴이 급한 게 아니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는 메일 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브로드컴에 의해 강제된 LTA 이행을 위해 삼성전자는 당초 채택했던 경쟁사 제품을 브로드컴 부품으로 전환했고, 구매 대상이 아닌 보급형 모델에까지 브로드컴 부품을 탑재해야만 했다. 브로드컴 부품이 경쟁사업자보다 비싸 단가 인상으로 인한 금전적 불이익(최소 1억6000만 달러)도 입었다.
또한 LTA로 인해 브로드컴의 경쟁사업자들은 제품의 가격과 성능에 따라 정당하게 경쟁할 기회조차 잃었고, 장기적으로는 부품 제조사의 투자 유인이 없어져 혁신이 저해되고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우려까지 초래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브로드컴과 같은 반도체 분야 선도기업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거래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고, 관련 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억제해 기술 혁신 기반인 반도체 시장의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과 경쟁 여건을 조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