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친환경 건물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세계 최대 탄소배출 국가인 미국도 ‘건물 탈탄소 전쟁’에 칼을 빼들었다. 정부의 강력한 인센티브와 규제, 관련 제도의 뒷받침, 시장의 인식 개선을 세 가지 축으로 선도 자리를 꿰찼다.
19일(현지시간) 뉴욕시 등에 따르면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은 2019년 기후활성화법의 하나로 ‘뉴욕 지방법 97조(NYC Local Law 97)’를 통과시켰다. 건물의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40%, 2050년까지 80% 줄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탄소배출 관련 가장 획기적인 법안으로 평가됐다. 해당 법에 따라 2030년까지 600만t의 이산화탄소(CO2)가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뉴욕시는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하면서 인센티브와 강력한 패널티를 병행해 시장 참여를 유도했다.
뉴욕은 대표적 지원책인 NYC PACE(Property Assessed Clean Energy)를 도입, 만족할 경우 재산세를 돌려준다. 일종의 세금환급 제도다. 반면 패널티도 강력하다. 현재 건물의 배출허용 기준을 25% 낮추고 에너지 사용강도가 높은 상위 20% 건물은 2024~2025년, 상위 75%는 2030~2034년까지 배출허용치를 맞추도록 했다. 기준 미달 시 벌금을 물리는데, 뉴욕 한 고층 건물의 연간 벌금은 2억2000만 원에 달할 전망이다.
조지프 앨런 하버드공중보건대학원 교수는 “유럽연합의 배출권거래제도보다 최소 2~3배 이상 높고, 학계에서 탄소중립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이라고 제시하는 범위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일찌감치 인증제도를 도입, 친환경 건물에 대한 인식도 끌어올렸다. 미국그린빌딩협의회(USGBC) 설립자이자 초대 CEO인 릭 페드리지 지휘 아래 가장 영향력 있는 친환경 건물 인증 제도인 리드(LEED, 친환경 저탄소 인증제도)가 제정됐다. 리드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리드는 물 효율성, 에너지 효율성, 설계, 현장의 지속 가능성 등의 항목에 대해 얻은 점수를 바탕으로 건물을 평가한다. 취득한 점수에 따라 리드 실버, 리드 골드, 리드 플래티넘 세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건축 법규에 영향을 줬다.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평가 기준을 제시, ‘친환경 건물’에 대한 인식 개선도 이끌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단지(WTC Campus)’를 찾아 피터 템플턴 USGBC 회장과 면담하고 서울형 LEED를 용산에 첫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USGBC와 친환경 도시개발 인증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오 시장은 “협약을 계기로 용산국제업무지구처럼 일정한 지역을 개발할 때 과거와 달리 지역별로 탄소 저감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리드 인증 건물은 인증을 받지 않은 건물 대비 약 20~40%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최종 운영비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친환경 건물에 대한 기대치는 시장 경쟁을 자극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천루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녹색 개조에 1억3400억 달러를 사용, 3년 만에 440만 달러, 에너지 40% 절감 효과를 냈다. 브루클린에 있는 ‘100 플랫부시’는 뉴욕시에 들어선 첫 100% 탈탄소 건물이다. 50층 높이의 ‘원코트스퀘어’는 600만 달러를 투입해 냉방기 교체, 펌프히트(열을 저온에서 고온으로 이동시키는 장치) 업그레이드에 나서 연간 120만 달러를 절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의 전력화 바람도 거세다. 건물에서 사용되는 모든 전력 자원을 전기로 바꾸는 것으로, 화석연료에 비해 전환손실이 낮다. 버려지는 에너지가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석탄, 가스 등을 사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경우 발전·전력수송과정에서 약 60%의 전력손실이 발생한다. 전기 생산도 화석연료를 태워야 하는 만큼 온실가스 배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은 풍력,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고, 배터리와 에너지 저장장치 발전으로 신재생에너지 주요 약점도 개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