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장례방식을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비율이 높았다. 특히 만19~29세의 경우 ‘본인(생전 결정)’을 희망하는 비율이 53.5%로 절반을 넘었다. 남성(41%)보다는 여성(50.3%)이, 기혼자(44.7%)보다는 미혼자(45.5%)가 장례방식을 본인이 결정하는 게 좋겠다고 응답했다. 원하는 임종 장소로는 자택 등 주거지(39.7%)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병원 등 의료기관(30.1%), 잘 모르겠다(21.6%), 요양원(7.3%) 순이었다.
별도로 만난 7080세대와 Z세대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황망한 죽음은 ‘애사’임에 분명하지만 자신의 장례가 마냥 무겁고 슬픈 분위기가 아닌,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 ‘해피엔딩’이 됐으면 좋겠다는 데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죽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올해 미수(米壽)를 맞은 김종화(남·88) 씨는 이같이 답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거나 “죽음은 곧 구원”이라는 막연한 긍정성과 궤를 달리 하는 답변이다. 지상 최대의 권력과 부를 누려도 언젠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묘한 위로감을 준다.
김 씨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태어났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온몸으로 관통했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32년간 일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 시작 전 “빨리 죽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민폐”라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자신의 존재가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이 있음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지난 7월 27일 서울 강남구 역삼노인복지관에서 만난 7080세대 어르신들은 차분하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했다. 어르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죽음을 마주해야 남은 생이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마침 복지관에서 최근 어르신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종체험 교육을 참가한 후여서 더욱 담담해 보였다.
노래교실, 운동교실 등에 참여하기 위해 이따금씩 복지관에 들른다는 김 씨는 “죽고 난 다음에 관에 들어가는 느낌은 영원히 모르는 거고, 살아 있을 때 관에 들어가는 건 어떨지 궁금했다”며 “막상 관에 들어가보니 그동안 살아온 생활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목소리로 “관에 들어가 있으니 엄마가 제일 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같은 복지관에서 만난 김모니카(여·77) 씨는 “잘 산다는 건 잘 버리는 일과 같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과 하나씩 작별하는 것”이라며 “죽기 전까지 잘 버리고, 비워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복 이듬해 태어나 평생 교사로 생활하고 은퇴했다는 김 씨에게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50대 딸이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개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하지만 김 씨는 달랐다. 그는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의 삶이 있다”며 “살아있는 날 까지 최선을 다해서 너랑 나랑 즐겁게 살다 가는 거다. 내가 없어도 잘 살거라고 믿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겠나. 잘 살고 못 살고는 이제 자기 몫이다”고 말했다.
복지관 임종체험 교육에 함께 참여한 박정례(여·68) 씨는 “내 영정사진을 마주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겹쳐지더라”며 “사진 찍을 때 좀 더 밝은 모습으로 찍을 걸. 내 장례식이니까 날 아는 사람들이 많이 올텐데, 좀 웃는 모습으로 찍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혼기 어르신들은 우리의 장례문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본지 설문조사(18일자 10면 참조)에서 부조 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29.1%)이 긍정적 비율(19.6%)보다 높았다. 60대 이상에서는 부정(38.1%)과 긍정(22.6%)의 격차가 더 컸다.
김종화 씨는 “부조 문화는 오래 지속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에게는 부조 문화가 꼭 필요하다”며 “장례비도 없이 죽는 사람이 많다.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나는 부조 문화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모니카 씨는 “그냥 몸만 와서 빌어주기만 하면 된다. 바쁘면 안 와도 된다. 난 거기에 대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요즘은 연락올 때 미리 ‘부조금 사양’이라고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장묘(葬墓) 방식에 관한 의견도 다양했다.
김종화 씨는 자식들에게 화장을 당부했다. 김 씨는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냥 화장터 옆에 뿌리면 된다. 산이고 바다고 필요 없다. 죽고나서는 근거를 많이 남기면 안 된다. 자식들 바쁜데 제사도 지낼 필요 없다. 그저 살아 있을 때 잘하면 된다”고 했다.
박정례 씨는 “산분장에 특별한 거부감은 없지만 난 매장을 원한다”고 했다. “장례식은 생전 내가 좋아했던 장소에서 했으면 한다. 양수리 팔당댐이 보이는 남향 나무 아래 우리 강아지 두 마리가 묻혀 있는데 거기에서 내 장례식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장례식장에 틀고 싶은 음악으로 김종화 씨는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김모니카 씨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박정례 씨는 고복수의 ‘희망가’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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