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장인의 푸념이 예사롭지 않다. 이사를 앞두고 있는 그는 살고 있는 집을 내놓은 지 3개월이 되도록 팔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중도금은 어찌어찌 마련했지만,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 집이 나갈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당장 팔리지 않으면 잔금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금리도 높고 한도도 생각보다 적게 나와 결국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나마 경제적인 여유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전세 기간이 다 끝나간다는 또 다른 이는 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대출 한도가 생각보다 나오지 않아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조차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당장 모아놓은 돈도 없는 데다 집에 손을 벌릴 형편도 못 돼 이러다간 길바닥에 나앉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서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지는데 정부는 과연 체감이나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 주변인들의 답답함은 공감이 간다. 금융당국은 최근 가계대출 증가에 대한 책임을 은행에 떠밀며 압박하고 있다. 급기야 서민금융 강화를 외치던 금융당국은 정책금융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에 대해서도 일반형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부부합산 소득이 1억 원을 초과하거나 주택가격이 6억 원을 초과하는 일반형 대상자에 대해 이달 26일까지만 신청받기로 한 것이다.
일시적 2주택자 역시 마찬가지다. 일시적 2주택자 역시 기존 주택을 3년 내 처분하는 조건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집을 내놔도 팔리지 않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당장 이사 날짜는 다가오고 중도금과 잔금을 치를 여력이 없어서 은행권에 손을 벌리게 된다. 그런 이들을 위한 정책금융상품 지원이 중단되면 결국 서민들은 더 고충을 느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서민들은 대출을 통해 긴 시간 근근이 버텨왔다.
이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늘고 연체율에 대한 우려도 커진 상태다. 올해 초만 해도 서민 생활안정자금 지원을 위한 각종 정책금융상품이 나왔지만, 신청조건이 까다롭거나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방향성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특례보금자리론, 소액생계비대출 등이 출시되면서 정책금융상품 이용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특례보금자리론의 유효 신청금액은 35조4107억 원으로, 올해 목표공급액(39조6000억 원)의 89.4%를 채웠다. 소액생계비대출 역시 7월 말 기준 총 484억4000만 원(대출 건수 7만9293건)이 공급됐다.
서민들은 정책금융상품에 매달리며 갈수록 어려운 현 상황을 이겨내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단순히 은행권을 옥죄서 서민의 대출길을 막고, 특례보금자리론처럼 정책금융을 줄이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인지 의문이다.
차라리 주택담보대출 증가가 가계대출 급증의 주원인이라면 추석을 앞두고 발표할 국토교통부의 주택공급대책에서 공급량을 늘려 집값이 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주는 게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