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대차 파업보다 더 무서운 '이것'

입력 2023-09-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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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연구직 노조원들에게 정년 연장은 먼 얘기예요. 저희 입장은 하나도 반영이 안 되고 있는 거죠.”

현대자동차 한 연구직 직원의 토로다. 현대차에 입사하는 신규 직원은 자동으로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에 가입돼 조합원 신분을 갖는다. 사무·연구직 직원도 마찬가지다. 다만 책임(과장급) 이상으로 진급하면 조합원 자격을 잃는다. 즉 현대차 노조에 가입된 사무·연구직 직원들은 MZ 세대로 불리는 대리급 이하 직원들이라는 의미다.

현대차 노조가 18일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의 찬반투표에 들어갔다. 합의안이 통과되면 현대차 단체교섭은 5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달성한다. 1987년 노조 창립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젊은 연구직 인원이 대다수인 남양연구소에서만큼은 높은 반대율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직원들이 모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사무·연구직 직원들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 임단협에서 정년 연장을 최우선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비교적 연령대가 높은 생산직 근로자들에게는 정년을 늘리는 게 가장 큰 관심사다. 그러나 젊은 사무·연구직 노조원들에게 정년 연장은 먼 얘기다. 이들은 회사가 지난해 최고 실적을 낸 만큼 임금과 성과급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주길 바란다. 사무·연구직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의 직군, 세대별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현대차의 파업 찬반 투표에서도 연구직 위주로 구성된 남양연구소 위원회의 파업 찬성률은 97.1%(투표자 대비 찬성)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임금과 성과급에 대한 불만을 투표로 표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2년 전 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현대차 사무·연구직 노조가 출범하기도 했으나 노조위원장이 퇴사하며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전통 제조업에서 정보기술(IT)이 융합된 모빌리티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핵심 연구 인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 곧 회사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어쩌면 공장이 며칠 멈추는 것보다 연구소가 멈추는 것이 현대차의 미래에 더 부정적일지도 모른다. 회사와 노조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무·연구직의 불만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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